지금은 들리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엄마는 늘 거기에 있단다.

by 상처입은 치유자

"엄마는 잘 도착했어. 오늘도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해! 끝까지 옆에서 너를 응원할게~"

"나도 사랑해요."


글자를 세본다. 점점 짧아진다. 이모티콘도 성의 없이 아무거나 보내는 것 같다. 화면을 올려 몇 달 전 대화를 읽어 본다. '예전엔 나보다 세배는 더 많이 보냈네.' 그렇게 한참을 1년, 2년 전 문자까지 읽어본다. 그러다가 화면을 꺼버린다. '뭐 하러 이러고 있나.'


나의 카톡에 1이 사라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끝내 아이의 말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카톡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8시 17분.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 이 시간 이후엔, 카톡을 보내지 않는다. 내 메시지에 좋아요라도 하나 눌러주지.


어쨌건 아이는 엄마의 말에 반응하지 않는 독립된 아이가 되었다.




전날 밤,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왜 같이 안 있어줘?"

흠.. 침묵을 해보자. 도대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번엔 선물하려던 침묵이 아니라 얼어버린 침묵이 맞는 것 같다.


"요즘 힘들었구나."

침묵 속에서 겨우 찾은 말이다. 어딘가 AI 반응처럼 저장해 둔 게 잡혔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겠냐. 그냥 나도 힘들게 살고 있는데.


"엄마가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어?"

겨우 겨우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문장 좀 더 읽고 외워둘걸. 게으른 과거의 나를 탓해본다.


"당연한 거 아니야? 엄마라면 그래야지. 나는 불쌍해. 여기에 태어나서."

또 레퍼토리의 시작이군. '이 생각의 근원을 찾아봐야겠어.' 은근한 승부욕이 저만치에서 꾸물대고 있다.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내가 승부욕이 일어나면 말이 빨라지고 짧아지며 얼굴이 굳는다. 그럼 아이는 그 표정을 빌미로 또 퍼부을 것이다.


"네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안타깝다고 생각해. 그래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그건 알아야 해."

이호선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사를 정확하게 따라 했다. 저를 살리셨어요!


"무슨 최선을 다했는데?"

아.. 이러면 쪼잔하게 다 읊어야 되잖아. 고민된다. 내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뭐 이래야 하나? 내 스타일이 아닌데.


"방 구조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꾸고, 아침에 앵무새 밥그릇 씻어달라는 거 까지 하고..."

결국.. 참지 못한 승부욕이 말을 발사했다. 뒤늦게 알아차린 나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건 내가 바라는 묵직한 엄마가 아닌데.


"어쨌건 엄마의 목소리도 싫고, 엄마가 만든 이 환경도 싫고. 다 싫어. 엄마는 지금 이 집이 좋아? 난 엄청 불편한데?"

음.. 난 좋은데. 난 미니멀리스트라 뭐가 없는 게 좋은 사람이다. 지금 나는 정말 만족한다.


"불편하다고 느끼는 게 있어?"

진심 궁금하다. 물음표살인마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바로 그 호기심천국이다.


"엄마는 안 느껴져? 어떻게 이게 안 불편해?"

반응이 궁색하다. 자기가 휘두른 칼을 자기가 놓쳐서 저만치 멀리 떨어진 허탈감이 묻어 나온다. 아이가 민망하지 않게 그냥 쳐다본다. 얼굴에 힘을 빼고.


"그리고 엄마는 왜 엄마 할 일만 해? 대학원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그런 것만 열심히 해. 그리고 엄마는 직장에서도 뭘 잘 못할 거야. 자격이 없어."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땐 우주가 무너지는 것처럼 내 몸이 땅으로 꺼졌다. 나도 많이 컸다. '그래서 지금 너가 가르쳐주는 부모 자격 수업 재수강중이잖아~' 라며 툭 받아들인다. 아이의 워딩이 정확하지 않은데 아이는 나를 자격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제 독립하고 싶은가?'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사람이 뭐 처음부터 자격이 있어서 뭐가 되는 건 아니니까, 엄마가 자격이 없을 수는 있지. 그래서 엄마는 배우는 게 좋아. 엄마 자격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어."

슬쩍 날아오는 주먹을 피해 본다. 이제 이 정도는 슬로 모션이다.


"나에게는 노력이 안 보이는데?"

네가 못 본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않겠니? 아직 애기다.


"네가 못 볼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엄마 노력이 없는 건 아니야."

나이가 드니 알겠다. 우리 모두는 나름의 노력을 하고 산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어쨌든 엄마는 이상하고 자격 없어. 내가 힘든걸 하나도 몰라. 엄마 일만 열심히 해. 애한테 관심이 없어."

아이는 더 퍼부울 수 있었다. '관심을 간섭이라고 했을 땐 언제고 침묵을 선물하니 무관심이라네.'라고 내 억울함이 말을 걸던 도중에 소리가 들린다.

"삐삐 삐삐삐"

이 소리에 아이는 자기 목소리를 낮춘다. 아빠의 귀환.


"왜? OO아? 무슨 일이야?"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이~엄마 이상하다고.."

'왜 말꼬리가 흐려지는 게냐?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니..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이는 자기 방으로 사라진다. 그걸 보니 나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려고 한다.


저런 말을 듣고도 무너지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제대로 무너져봤기 때문이다. 처음 저 말을 들었던 몇 달 전엔 나도 소리를 질러 아이를 제압했다. 방바닥에 엎드려 목놓아 울기도 했다. 아이가 보란듯이 말이다. 최악이다.


자기 고통을 봐달라는 아이의 신호를 못 알아듣고 "예의 없음. 게으름. 무능력함"이라는 단어로 아이를 틀에 가두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의 행동들이 나에게 사무치게 불편함으로 다가오자 그제서야 후회되는 행동들을 피하고자 움직였다. 그 이야기는 매우 내밀하고 부끄러워서 들여다보려면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게 갑자기 종료된 상황 후에 남편과 대화로 상황을 복기했다. 나와 아이 사이 서사의 시작은 아라비안나이트 급이라 천일은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또, 리 영화가 상영되는 중간 중간 자주 나갔다 온 남편에게 어디부터 무엇을 설면해야할지 막막해서 큰 사건만 간단하게 정리해 준다. 한 차례 전투 후라 그럴 체력이 없었고 내 감정 처리가 먼저 이기도 했다.


"내가 이상하고 자격 없대. 그래도 걱정하지 마. 예전엔 울부짖더니 지금은 눈물도 하나도 안 흘리고 아주 논리적으로 말하잖아.전두엽이 깨어 있다는 증거래. 회복하는 거야."

걱정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만드는 데 대상감인 남편에게 걱정말라는 말을 먼저 건넨다. 사실 나에게 거는 최면일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오빠는 나에게 금융치료만 해주면 돼. 나 고생하니까."

화제를 바꿔 상황을 빠르게 마무리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와 공명하지 않겠다고 책을 덮어버린 덧이다. 선하고 소중한 나의 남편이 말한다.

"얼마 줄까"

"응.. 나 사랑하는 만큼."


오늘은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지 않은 통장을 바라본다. 그가 찍은 사랑의 크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어.


이전 18화아이와 끝나지 않을 파인튜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