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진 않아요...
'아!! 오늘 저녁 먹으면서 엄마가 내 커튼 주문해 준다고 했는데.. 아이 진짜!! 메시지에 좋아요라도 넣어줄걸.'
우리 아이의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날은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디자인의 커튼을 주문하기로 한 날이다. 누구 돈으로? 엄마 돈으로. 훗.
지난밤 엄마에게 모진 말을 퍼붓고 아빠의 등장으로 예기치 못한 후퇴를 했다. [지금은 들리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편] 다 쏟아내지 못한 말은 욕실 칫솔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대신했고. 그 분함 속에서 맴도느라 커튼에 대해서는 깡그리 잊고 있었을 것이다.
이쯤 해서 우리 아이의 심리를 해부해보고자 한다.
#1. 전날 아빠가 오자 말꼬리를 흐리며 후퇴함.
"아빠도 엄마가 싫을 걸? 결혼한 걸 후회도 하고!"
"엄마가 완벽하진 않으니까.. 아빠도 엄마에게 힘든 점이 있겠지. 뭐! 그래도 엄만 노력하고는 있어."
이건 뭐 거의 인연 끊겠다는 망언을 한 데다 근거 없이 아빠를 팔았으니 그 주장을 들키기 전에 도망가자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분노가 쉽게 사라질리가 있나. 애먼 칫솔에게 화풀이가 향했다.
#2. 엄마 카톡 읽씹.
'나 엄청 삐졌거든. 읽었지만 대답 안 해! 절대 먼저 문자 안 보내. 난 삐졌으니까!!!'
일명 읽씹으로 대답한 것이 씁쓸했던 건 나도 인정한다. 아이가 긴 문장으로 이모티콘 가득 넣어 반응해주면 그게 그렇게 좋다. 내 마음과 별개로 우리 아기 사자가 훤히 보이는 수를 쓰니 귀엽다.
'드디어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에서 평범한 사춘기 소녀가 되었구나! 다행이다!'
#3. 학원에서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얼마나 멘털 개 쎈 쿨한 엄마인지 보여주지. 주말에 무, 다시마, 파뿌리, 훈연 멸치, 양파 그리고 울 엄마가 만들어준 집간장을 넣고 1시간 동안 푹 끓인 육수를 냉동실에서 꺼낸다.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을 넣고 시들어가는 채소를 때려 넣는다. 떡과 어묵을 냉동실에서 꺼내 스트레스 풀리는 매콤한 떡볶이를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 아차! 눈에 힘풀고 미소를 입어야지!
"아이구우~우리 OOO 왔어?"
몇 번이나 내 머릿속에서 돌아간 리허설을 그대로 연기해 낸다. 아이는 미소를 짓는 것인지 그저 입꼬리를 올려 고정해 놓은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으으으응~~'이라며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나를 안아준다.
우리 아이가 민망함이라는 개념을 배웠나 보다.
#4. 저녁식사 시간
"맛있게 먹겠습니다!"
목소리가 고조되어 있다. 새를 좋아하더니 새 지저귀는 소리를 따라 하는 것 같다.
'언제 커튼이야기를 꺼낼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음식 이야기로 식탁을 가득 채운다.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나도 눈을 맞춘다. 아이는 또 입꼬리를 올려 고정시킨다.
'기다려. 쿨한 엄마인 만큼 커튼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낸다!'
"우리 약속한 대로 저녁 먹으며 커튼 주문할까?"
"네에~!" 어린이집 다닐 때를 소환하는 목소리다.
'다행이다. 커튼 안해줬으면 어쩔뻔~ 모진 말 또 할 뻔했네!' 마음의 소리를 너무 크게 말하고 있구나, 우리 OO. 온동네가 다 알겠네!
그런다고 우리 아이가 고분고분한 아이는 아니다. 결국 자기 진심을 모진 말로 포장해서 나에게 마음을 알아맞혀 보라고 던지고 갔다. 그 말에도 난 미소를 올려보낸다. 역시 넌 멋있다. 자본주의에 굴복하지 않는 그 지조를 칭찬한다.
우리 아이는 멘탈 개 쎈 쿨한 엄마의 청출어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