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영혼이 흐를 수 있는 깊은 계곡

사주가 그렇대요. 젠장.

by 상처입은 치유자

사주를 봤다. 오죽 답답하면. 내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사주라는 틀 안에서라도 이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하고 희망을 걸고 싶었다.


사주를 믿으라거나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느님 부처님 예수님 성모마리아 알라신 사주팔자 제미나이. 나에겐 이 모든 것에 의지하며 답을 찾던 시절이었다.


고통의 울음을 듣던 날.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티브이에서 보던 그 무서운 단어.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 나의 완벽한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둘의 생년일시를 넣고 사주를 본 것이다. 도대체 이 문제는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나는 바위를 감싸는 넝쿨. 앞으로 뻗어가는데만 열정을 뽑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규칙과 통제가 전부. 아.. 그런 거 같다. 나에게 규칙이 없으면 불안하다. 내 세상에서는 시간에 따라 계획을 세워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예외가 생기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책임이라는 이름아래.


아이는 깊고 큰 바다. 자신만의 고집도 생각도 있다. 누군가 자신을 틀에 가두려고 하면 큰 바다는 쓰나미로 쓸어버린다. 예술가적 감성이 뛰어나다. 그래서 세상을 더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자 이 둘이 만났다. 그럼 뭐다? 쓰나미다.


아이는 매우 성실하다. 여전히. 하지만 내 세상에서 보자면 시간 계획에 맞지 않았다. 50분에 외출한다면 나는 45분에 이미 신발장에 서 있었다. 50분이 되는 순간부터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방사한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압박이.


아이는 그림을 진짜 잘 그린다. 화가가 된다는 꿈을.. 내가 꺾었다. 나는 아이가 내가 모르는 분야를 개척한다는 게 불안했다. 나의 넝쿨로 아이를 감쌌다.


깊고 웅장한 바다의 시간을 넝쿨 따위가 그 시간 속으로 욱여넣고 움켜쥐려고 했다. 넝쿨 안에서 바닷물은 썩어 갔고 새어 나오는 바닷물을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깊고 웅장한 바다는 세상을 흔드는 굉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것이다. 넝쿨 따위는 들어보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소리였다. 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어쩌면 해야 하는 일을 한 것이다.


결론은 내가 아이의 영혼이 흐를 수 있는 계곡이 되어 주는 것이란다. 큰 바다를 품고 흐르게 할 수 있는 거대한 계곡. 바다는 계곡을 침식시킬 수도, 큰 파도로 칠 수도 있다. 그래도 계곡은 그곳에 담담하게 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한다는 듯이.


아이는 나의 통제와 계획에 숨이 막혔을 것이다. 사주 풀이를 들었을 때 내 안의 슈퍼오지라퍼 아이가 어찌나 난동을 피우던지. 가라앉히느라 시간 좀 걸렸다.


그러면 내가 지금 계곡이 되어있느냐. 그럴 리가. 계곡이 형성되는 데는 몇만 년 수억 년이 걸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다. 매일 아이의 파도와 무게를 겪어내면서.


나는 결국 계곡이 될 것이다.


쉽지 않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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