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이를 앙문다.
"엄마랑 놀고 싶다."
지난밤 눈이 반쯤 감긴 나에게 아이가 이 말을 던진다. 경고등이 울린다.
이건 요청으로 신호를 감싼거다.
"엄마 내가 지금 불안한데 누군가와 이 불안을 함께 처리하고 싶어요."
육아휴직 3년, 초등학교 1학년 1년 휴직의 짬빠다.
아이가 자기 방으로 초대해 온갖 끼를 부린다. 중학생이 파티용 안경을 쓰고 우리 앵무새들과 함께 춤추며 무슨 노래를 만들어 뮤지컬 공연을 한다. 텐션이 높다. 불안을 감추려는 격한 몸부림이다.
"나 안 해!"
갑자기? 웃음기가 싹 사라진다. '불안을 함께 삭여주세요.'라는 요청을 못알아들은 상대에 대한 벌을 준다. 아이와 주파수를 맞추려다 아이의 눈빛 레이저에 맞았다.
"왜에~~~? 엄마가 너무 무관심해?"
라고 물었더니, 바로 반말을 시전한다. 반말로 화살을 나에게 던진다.
"영화 보고 싶다." 갑자기?? 매력적이다. 사람을 긴장으로 떨리게 한다.
"그래~ 뭐 보고 싶은데?"라고 묻고 그러라고 했다.
샤워하고 영화를 본다고 한다. 그래 씻어라. 그 샤워가 마음을 좀 안정시켰는지 피아노 연습을 하겠단다. 불안을 정면돌파하려는 의도 같다. 다음날이 밴드부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나보고 들어달란다. 하아.. 나에겐 누워 잘 수 있는 자리만 보이는데.
몇 번 연습 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며 잠에 들었고 나보고 새벽 6시에 깨워달란다. 깨울 때 조심해야지. 아이는 불안 처리 중이라 반응이 매서울 수 있다. 친절할 에너지가 없다.
예상대로다.
가래를 뱉는 듯한 소리를 매우 강하게 낸다. 침대에 누워 괜히 매트리스를 강하게 발로 찬다. 눈을 감는다. 코를 찡긋하며 눈을 떴을 땐 똑바로 보지 않는다. 말의 억양이 단조롭다. 발음을 뭉개기도 한다. 나에게 무엇인가 부탁할 때도 부드러운 말투는 아니다.
그래 넌 지금 불안처리 2단계에 왔구나. 참고로 높은 텐션은 초기 반응으로 불안을 회피하는 단계라고 나는 추측한다.
아이는 밴드부에서 활동 중이고 피아노를 맡고 있다. 자신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학년 초에 밴드에 지원해서 선발이 되었다. 그리고 공연 불안을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여기에서 다섯 키나 내리면 뭔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매니저가 이걸 내려서 연주하자고 해요."
이 부분이다. 자신의 자율성을 침해받았다. '함께 살다 보면 서로 의견 조율도 하고 그러는 거지~'를 말하려다 삼켰다. 꿀꺽.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엄마 내가 편곡한 거예요? 어때요?"
그래서... 난 AI 반응을 해줬다. "오~~~ 좋은데?" 억양이 이게 아니다. 아... 실패했다. 진짜 나는 모르겠다. 뭐가 다르다는 건지.
"에이 그냥 해야겠다. 별로인가 봐!"
인정받고 싶은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 뭐 내가 신도 아니고 어쩌란 거냐.
아이가 한 말 중에 뇌리에 남는 말은 이거다.
"엄마 내가 핸드폰 못 보더라도 응원메시지 보내줘요! 나 응원해 줘요!!"
그말을 듣자마자 나의 기억력을 믿을 수 없어 예약 문자를 보내놨다. 땡큐. 테크놀로지!!
아이는 잘하고 싶지만 틀릴까 봐 너무도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을 처리하는 아이의 옆에서 그 불안을 내가 맞아주기로 했다. 그 불안의 진동과 공명하며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해주고 싶다.
이번 불안 처리도.. 나는 이를 앙물고 있다.
태도에 대해서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