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우리 사이 공간이 어색하다.

곧 익숙해질 그 공간.

by 상처입은 치유자

"왜 엄마는 내가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

이제 막 갈아 놓은 칼같이 날카로운 말이 허공을 뚫고 그 새된 소리를 내 고막에 들여다 놓는다. 수신자는 고막인데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아이가 앞동 친정 집에서 우리 집까지 가는 길은 언제나 턱까지 찬 물속을 걷는 듯 무거웠다.

"집에 가기 싫다."


"그럴 수 있지." 짧은 대답으로 나의 씁쓸함이 새어 나오지 않게 여며 본다. 아이가 곁눈으로 나를 살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제 새어 나왔을지도 모를 씁쓸함을 입꼬리를 올려 닦아낸다. 이러면 완전 범죄가 될 수 있는 양.


아이는 외갓집이 좋다고 한다. 다행이다. 사람이 어딘가에서는 좀 위안을 얻어야겠지.


오늘은 "집에 가기 귀찮다."라고 말한다. 다르게 말해도 내 가슴엔 같은 말이다. 가슴은 여전히 똑같이 반응한다.


"그럼 조금 있다가 와. 엄마 먼저 갈게!"


예전 같으면 엄마랑 같이 간다며 따라 나왔던 아이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서 눕는다. 잠시 희망을 품고 말한다.

"엄마 간다!"

"응."

몸을 돌려 나왔지만 미련이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따라나왔으면.. 다시 미련 발자국을 지우듯 나는 밝게 인사한다.

"갈게요~!^^"


집으로 함께 돌아가던 지하주차장 길이 어색하다. 삐삐삐삐삐. 유난히 큰 도어락 소리가 채워진 집에 들어온다. 유튜브를 틀어 소리로 적막을 대신해 본다.


"항상 혼자 있는 나를 꿈꿨는데..."

혼잣말을 하며 이 시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지 생각해보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그냥 할머니 집에 있는 거잖아."

혼자 읖조린다 한들 별 도움이 되겠는가 싶다. 진짜 마음이 아닌 말은 그냥 몸이 안다. 야속하다. 좀 속아주지.


내가 아는 모든 감정을 이 빈 공간에 펼쳐본다. 후련한. 서운한. 슬픈. 절망적인. 자유로운. 설레는. 외로운. 더 복잡한데 아는 게 여기까지다. 답답하다. 여기까지 읖조리다가 이것을 한 주머니에 넣어본다. 낯섦.


아이는 이제 자기의 길을 간다. 나와 떨어져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고 우리의 만남 사이에는 더 넓은 시공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 없는 그곳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새롭게 만든 우리 사이의 거리가 설다.


아직은 그 공허하고 낯선 곳에서 가만히 부유하려고 한다. 곧 익숙해질 우리 사이의 거리라고 믿으며. 중력 없는 그곳에선 괜히 잘못 움직이다가 무엇에라도 부딪히면... 우주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내려 갈 수도 있다.


아이가 돌아오면, 아이의 중력에 기쁘게 끌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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