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하이드 파크입니다.
이 벤치다. 내 핸드폰 배경화면의 그 벤치다. 바닥에 맺힌 이슬을 맨손으로 닦아낸다. 아직 물기를 머금은 그자리에 내 몸을 앉힌다. 축축한 런던의 이슬이 내 몸에 스며든다. 한숨을 쉰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10년 전 지금 이 시간에 상상했던 그 모습. 해냈다.
크라프트 봉투를 부스럭대며 꺼낸다. 미지근한 열기가 손을 타고 올라온다. 천천히 봉투속에 손을 넣어 살포시 샌드위치를 잡는다. '이 조그마한게 6파운드나 되다니..'라는 생각에 천천히 입을 벌려 베어 문다. 코속으로 베이컨 향이 훅 들어온다. 모든 미뢰가 깨어난다. 런던의 맛이다.
눈부신 햇빛에 눈을 약간 찡그리며 고개를 든다.
'저렇게 큰 개를 두 마리나 키우다니 런던은 동물병원 진료비가 안 비싼가봐?'
개를 보니 아이가 생각난다.
"수의사가 될거야!" 라고 외치던 그 질풍노도의 아이는 지금 강아지 수술이 있다며 내 전화를 황급히 끊었다. 동물을 그리도 좋아하더니만. 너는 너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이지.
콧 속으로 습기머금은 공기가 들어온다. 샌드위치의 토마토가 공기와 만나 더 신선하고 달큰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6파운드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다. 런던 물가에 자비란 없다.
천천히 벤치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려 발걸음을 시작한다. 30분후 M&S 캐셔로 일을 시작한다. 하루 2시간. 그곳의 다양함이 좋다. 또,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다는게 가장 좋다. 주급을 받으며 싸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니.
가는 길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한팀이 되어 아이의 수수께끼를 머리를 맞대고 풀던 시절에 너무 고마워서 이런 약속을 했다.
"오빤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내가 나중에 돈벌어서 집 지어 줄게. 오빤 살림이나해!"
남편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후회는.....안하려고 노력한다.
"어~밥은 먹었고? 근데 00아, 네가 지어달라했던 서재 있잖아. 물이 새더라고. 그래서 리모델링을 해야하는데 벽지좀 골라줘. 지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곧 만날 걸 알아서 우린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알았어. 근데 오빠 감각이 더 좋은데..난 무채색이면 돼!"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마트로 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가 가득한 곳으로.
"엄마!"
날카로운 목소리가 영국의 공기를 가로질러 나에게 달려온다.
'뭐야..수술할 시간이라며 영국엔 왜 있어?'
목소리쪽으로 고개를 돌려본다.
"엄마! 나 학원 데려다 준다며!! 늦었어!"
'아 맞다.' 내 손엔 샌드위치가 아니라 김밥이 들려있었다.
"알았어어~가자!!"
바쁘게 차키를 꺼내들고 신발장으로 향한다.
"엄만 내가 늦었다는데 왜 웃고 있어?"
엄만 이미 영국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