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퀀텀점프"를 위한 도약 중입니다.(1편)

내 선택이 불안의 중력을 이기길 기대하면서요.

by 상처입은 치유자
퀀텀점프

1913년, 닐스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유래한 개념.
전자가 에너지를 흡수했을 때 궤도를 따라 서서히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다음 단계로 불연속적인 도약"을 하는 현상


상담을 전공하고 싶었다. 큰 이유는 없다. 그냥 나를 비롯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는데, 상담을 공부하면 그 틀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아쉽게도 대학원 합격증을 받지는 못했다. 대신 나는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를 인지심리학으로 이끌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 당시 유행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의 인지를 바꾸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그 마법 같은 말이 매우 매혹적이도 하다. 한참을 나의 인지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괴로웠다. 나에게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은 항상 시끄러웠다. 마음의 소리를 잠잠하게 하고 싶기도 하고, 이 생각과 불안은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고 싶었다.


모든 고통이 집착에서 온다는 불교를 공부했다.

"화살을 맞았는데, 얼른 뺄 생각을 해야지. 이 화살은 누가 쐈는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생각할 새가 어디있는가?" 라는 질문에 띵~하고 종을 울린 것 같았다.

TMI를 고백하자면, 나는 천주교 신자에 세례까지 받았다. 지금은 냉담자이긴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먼저 세례 받고 세대주를 만들어야 자녀가 세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학교 때 영어이름을 갖고 싶었던 나는 엄마에게 먼저 세례를 받아달라고 했다. 우리 엄마도 날 사랑했나 보다. 부탁을 들어주셨다.


불교의 고집멸도와 오온, 그리고 팔정도에 빠져있었다. 그 시절... '부처는 천재인가 보다' 라며 세상을 불교로 바라보았던 시절이었다.


드디어 양자역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양자'라는 말을 하면 왠지 내가 똑똑해 보였다. 직장의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가만 보면 지적 허세가 있어!" 흠... 인정한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다 보니 뇌를 알고 싶었다.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사고하는 것인가. 그래서 뇌과학 책에 빠져 뇌의 메커니즘을 알아보고자 했다.


뇌는 우리의 모든 외부 자극과 내부 자극을 종합하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컨트롤 타워인데, 이 종합의 결과는 행동이다. 그럼 행동은 왜 하는가? 기본적으로는 불안으로 부터 생존이다. 이 생존본능이 나에게는 이렇게 적용된다.


아이가 핸드폰을 보고 있다.(외부자극-관찰) 눈을 핸드폰 화면에 고정하고 웃고 있다.(외부자극-청각) 나는 퇴근 후 체력 방전 상태였고(내부자극-체력) 저녁식사를 차렸는데 아이가 아직 식탁에 앉지 않았다.(외부자극-관찰) 거실에는 건조기에서 막 꺼낸 옷들이 널려있다.(외부자극-관찰) 아침식사 설거지는 아직 처리도 못했다.(외부자극-관찰) 나는 식사 후 곧 대학원 수업을 들어야 한다.(외부조건) 아이는 30분 후 학원을 가야 한다.(외부조건)


이 자극들을 종합해 나의 뇌는 몇 가지 행동 선택지를 마련한다.


1. 뉴스에서 저런 모습은 핸드폰 중독 이랬어. 저걸 막아야 해. 애가 잘못되면 안 돼 이 불안이 날 죽일 것 같아."00아!! 핸드폰 좀 그만해!"라고 소리 질러야겠어.

2. 아, 소리 지르기도 힘드네. 몰라 나 먼저 먹고 일단 나도 핸드폰이나 봐야겠어. 나를 살리자!

3. 애도 나처럼 그냥 쉬고 싶은 가보다. 시간을 주자. 오히려 잘됐다. 나도 눈을 감고 잠깐 쉬면 되지 뭐.


소리를 지르면서 안 지르는 것과 같은 중간은 없다. 1, 2, 3번 중 하나를 골라 선택한다면, 나의 행동은 퀀텀 점프다. 전자에 에너지를 주면 뿅! 하고 궤도를 옮기듯 나도 행동 하나를 딱! 골라 선택한다.


1. 에너지 안 써도 된다. 불안의 중력에 저항하지 않고 그냥 하라는 대로 소리를 지르면 되니.

2. 다소 힘이 든다. 저 상황에 말 안 하고 닦달을 안 하기란 나에겐 힘든 일이다.

3.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든다. 블랙홀 같은 중력을 가진 불안과 멀어져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평화롭다. 이렇게 모순적이라니.


3번을 선택할 때 나의 지적 허세가 한 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게 세상을 보는 큰 창을 몇 개 내어준 것이다. 그 창으로 세상의 다양함을 알게 되었고, 나의 선택이라는 전자가 불안의 중력을 거슬러 퀀텀점프하는데 에너지로 쓰인 것이다.


나는 여전히 불안의 힘을 이기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나의 노력의 밀도가 낮아질 때쯤, 예외 없이 나는 불안에 끌려가도록 놔두게 된다. 저항할 새도 없이. 그러나 퀀텀 점프로 3번을 선택할 때 느낀 그 평화가 내 세포에 기억되어 있다. 이 기억을 잊지 않으려 나는 지식 보부상마냥 방황했나 보다.


한 인간을 인격체로 기를 수 있다는 생각이 어쩌면 오만일 수 있겠다. 육아는 오히려 한 인간 옆에서 내가 인격체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끊임없는 반성과 인내 그리고 나를 내려놓고 아이가 되어보려는 노력. 그 노력의 에너지가 나라는 퀀텀을 더 나은 곳에서 뿅~하고 나타나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더 높은 곳에 도약하게 하려고 아이는 그 수수께끼 같은 행동과 모진 말을 하나보다. 공부해서 풀어보라고. '고맙다'고 해야.... 겠지....?


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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