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모진 말을 하는 것은 에너지가 없어서예요.

예의는 그다음에 가르쳐도 늦지 않아요.

by 상처입은 치유자

"엄마가 싫어. 엄마 자격이 없어."


아이가 이리도 모진 말을 저에게 던졌을 때, 저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요?


1. 분노폭발형: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혼냈다. 무슨 말버릇이냐며.

2. 본전생각형: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에~~!!"면서 내가 얼마나 헌신했는지 나열한다.

3. 비련의 여주인공형: 슬피 목놓아 운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4. 연구자형: "아이가 엄청 힘들어서 그렇구나" 하고 이해하며 선만 지키게 한다.

5. 모두 다!


정답은 5번입니다. 1번부터 3번까지 다 해봤어요. 산전수전에 온갖 시행착오 다 겪었어요. 요새는 4번에 정착이 어느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4번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어린 시절 여행을 하면서였어요. 크리스마스캐럴의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이브날 했던 여행처럼요. 그곳의 어린 나를 바라보자 아이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생략된 말] 싫어. 엄마는 [생략된 말] 자격이 없어.


우리 아이는 체면이 온몸을 감싼 아이입니다. 밖에서는 온갖 예의를 갖추기 위해 에너지를 엄청 쓰고 있지요. 자신의 감정은 꾸우꾹 눌러 담아 한 곳에 담아둡니다.


그렇게 아이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늘 잘 보냈어?"

엄마의 질문은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합니다.


가면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자신의 모습, 나보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 앞에서 느꼈던 초라함, 양보하기 싫었던 그 마음, 화내는 대신 웃었던 나의 눈. 한꺼번에 몰려옵니다.


"엄마가 [내가 어떻게 밖에서 버텼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도 몰라주고 믿었던 엄마까지 나를 편하게 못 쉬게 해서 정말] 싫어."

"엄마는 [내 맘도 모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내 사랑을 받으려면 내 고통을 알아줘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제발 그 자격을 갖춰줘. 아직] 자격이 없어"


라고 외치는 거예요. 사실... 비명소리입니다. '엄마 너무 힘들어요 살려줘요.'라는. 오늘 힘든하루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이의 고통이지요.


밖에서 모든 에너지를 써서 엄마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렇게 짧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편해서 자기의 바닥을 보여주는 이 모순. 저는 이게 슬픕니다.




이 가설이 과연 맞을까요? 스크루지처럼 저의 기억을 바라봅니다.


시험을 보고 온 고등학생의 나는 집에 돌아옵니다. 내일도 시험이라 여전히 쉴 수는 없죠. 우리 엄마가 물어봅니다. "시험 잘 봤어?" 실망스러운 점수를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나에게 하는 저 질문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아 몰라~~!"


하루 종일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한 저는 퇴근을 합니다. 따스한 저녁 밥상에서 음식으로 위안을 받고 싶죠. 늙어서도 내곁에아줄 유일한 내편, 남편이 저에게 계속 말을 겁니다.


"오늘 뉴스에 말이야... 그러면 되겠어? 안 그래? 그리고 있잖아, 이번 주말에 결혼식이 있는데.. 부조가 너무 나가....."

'난 그저 밥만 먹고 싶다.' 집에서는 가면을 들어 올릴 힘도 없는 제가 생각하죠.


저는 남편에게 다음 중 한 가지를 골라 건성으로 어쩌면 약간은 퉁명스럽게 대답합니다.

"어.. 그러게 말이야.", "속상하겠다.", "고생했어.", "고마워."


제 가설에 제가 설득되었어요.




사랑하는 아이에게 모진 말을 듣는 것, 많이 슬픕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엄마가 자기의 맘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도 슬플 것 같고요.


그래서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게 먼저라고 하는가 봅니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엄마를 안전기지인 동시에 감정쓰레기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안전기지만 되어주기로 했어요. 감정쓰레기통 업무를 종료하자 아이가 진상고객이 잠깐씩 된다는 거 빼고는 저는 좀 편해졌습니다.


안전기지에서는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막 하는 곳이 안전기지가 아니에요. 서로의 선을 지켜야 안전기지가 유지되거든요. 아이는 아직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에너지가 없고 힘들다고 해서 모든 것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제가 쓰는 기술을 조금씩 전수해주려고 합니다. 에너지가 없을 때 자동으로 내보이는 "예의 기술"이라고나 할까요.


저 모습 그대로 사회에 내보내는 것은 안전기지 엄마가 할 일은 아니니까요.




요즘은 아이가 조금은 이해서 4번 반응읗 내비치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해졌어요.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무슨 부처님 가운데 반토막마냥 아이의 모진 말에 항상 "힘들구나~" 하며 받아들이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왔다 갔다 하지요. 저도 사람인데 OMR카드의 1~3번 선택지 위에 종종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진하게 칠하곤 해요. 알고도 틀리죠.


그래도 우리 아이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밖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소중한 사람에게 예의를 차릴 수 있게 체력 조절을 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요.


아이가 모진 말을 하는 것은 고통을 이겨낼 힘이 아직 없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어주려고 해요. 예의는 그다음 가르칠 거고요.


우리 사이가 진심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맨얼굴로 마주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온전한 '쉼'이 될 수 있기를. 날 선 말도 깎고 다듬어, 둥글고 단단한 진심만 읽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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