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도약을 위해 노력 중이에요.
지식 보부상인 나의 모습과 너의 일에 책임을 지고 있는 너의 모습이 닮아 있다.
아이가 컴퓨터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를 켰다. 방문을 닫아버렸다. 시각적 정보는 모두 차단됐고, 청각적 정보로 아이의 행동을 추리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의 뇌는 과거의 경험과 내 몸상태인 내부 자극을 종합하여 가능한 상황을 머릿속에 평행우주처럼 띄워주었다.
시험 기간이다. 고로 시험 범위에 대한 계획을 세우거나 인강을 듣기 위함이다. (희망)
아니다. 수행평가를 핑계로 컴퓨터를 켰다가 자연스레 유튜브의 세계로 도피하기 위함이다. (절망)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죽었지만 살아있다. 두 모순의 상황이 중첩되어 있었다. 내가 저 방문을 여는 순간 희망인지 절망인지가 결정될 상황이었다.
컴퓨터 방의 닫힌 문을 여는 것은 아이에게 영역침범이라는 비상벨을 울리게 한다. 그러므로 '닫힌문을 어떻게 벨을 울리지 않게 열 것인가.'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지를 만들어 본다.
1. 엄마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려준다. '엄마.. 가만히 있는 거 아니다. 너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라는 경고 같은 거다.
2. 벌컥 열고 '너 뭐 해?' 라며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는데 집중한다. 이 불안에 그냥 끌려들어 가기만 하면 되는 매우 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궁금증은 확인되겠지만 아이와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리스크기 크다. 몇 번의 실수로 나는 이 궤도에 나의 선택을 잘 올려놓지 않는다.
3. 출출하지? 라며 아이에게 간식을 들이밀려 슬쩍 컴퓨터 화면을 바라본다. 여기에도 평행우주는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두 개 정도이다.
- 수행평가나 시험공부 계획을 짜고 있다면? 엄지 척을 하고 뒤로 빠진다.
- 유튜브를 보고 있다면? 눈빛으로 마음을 전한다.
4. 그냥 둔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나의 불안질량에 끌려가지 않도록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왠지 지금의 불안에너지가 매우 커서 내가 안 빨려 들어갈지 의문이다. 거의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행동으로 외연화 되기 전까지 내가 만든 선택지는 모두 똑같은 지위에 있다. 행동으로 나오는 순간 퀀텀이 점프하여 전자가 뽕! 하고 튀어나올 텐데, 그럼 현실이 된다.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그 모든 엔트로피를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의 전자가 번짓수를 잘못 찾았을 때, 저 사춘기 생명체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른다. 사춘기의 불확정성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1번을 선택했다. 가장 소극적이지만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엄마가 밖에서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듣게 했다.
정말 내가 이런 엄마가 될 줄이야. 방문에 귀를 기울여 문을 통과하는 모든 소리를 들었다. 내 청력아! 도와줘! 하.. 아이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이 청각정보는 나의 불안을 날뛰게 했다. 하마터면 '문을 벌컥 연다!'라는 2번 궤도에 점프할 뻔했다. 이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휴~. 지금까지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
이제 3번 선택지를 위해서는 간식이 필요했다. 간식수납장을 열어 가장 좋아하는 초코바 하나를 손에 쥐었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 들어가서 툭 건네주며 나의 눈은 재빠르게 화면으로 향해 스캔했다.
그래... 역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이제 슈뢰딩거 고양이가... 절망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수행평가는 거의 다했어요. 조금만 하면 돼요."
혹시 아이도 이 순간을 위해 여러 선택지를 구상하고 있었을까? '알았다'라고 웃는 미소와 함께 한 말소리에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그 실망감을 숨겨본다.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하겠지." 방을 나오는 발걸음에 진득한 실망감을 잔뜩 묻혀 발자국을 남긴다. 아이가 제발 보았으면 하면서.
방에서 아이가 나오길 바랐지만, 나오지 않는 아이에게 또 몇 번 선택지를 들이대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가 직장인의 애환, 피곤함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불안의 냄새에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불빛이 새어 나오는 컴퓨터방. 잠시 정신을 모았다. 아! 아이가 아직도 컴퓨터 방에 있다. 상황파악을 마치고 슬며시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이에게 말을 발사했다.
"지금 1시가 넘었어. 네가 한 말과 행동이 맞지가 않아. 네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지 잘 생각해고 행동해."
아이는 컴퓨터를 끄고 자기 방으로 쿵쿵 거리며 걸어갔다. '그래도 아이에게 이성의 끈이 연결되어 있구나.'하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이의 후회 섞인 넋두리와 울음소리.
"엉엉엉... 오늘도 공부를 하려고 했는 데에..."
자신의 행동을 이제야 돌아본 아이는 후회 섞인 말과 함께 울음으로 자신을 달래 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졸리기도 했지만, 혼자 깨닫는 시간을 주고 싶어 달래주지 않았다.
네게 그 시간이 다른 궤도로 옮기기 위한 귀한 시간이 되길.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 왜 굳이 이아이는 나에게 와서 확인을 받았을까?
"엄마, 그래도 저 과학은 오늘 할 것을 끝냈어요."
그래. 잊고 있었다. 우리는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이다.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우리 아이는 공부하기 전 많은 의식을 치른다. 그것이 얼마나 시간낭비가 되는지 엄마가 바라보기엔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서 아이라는 '전자'를 '여기가 네 궤도야!'라고 온갖 수단으로 아이를 옮겨놓고 싶다.
하지만 궤도를 옮기는 것은 우리 아이가 해야 한다. 또, 퀀텀점프를 하기 위한 에너지를 어디서 무엇을 얻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는 단지 '여기 이것도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라고 말만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아이는 자기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혹독하게 해결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이 에너지가 되어 너를 너에게 가장 맞는 궤도로 올려놓기를... 나는 그저 곁에서 보이지 않는 도약의 순간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쓸데없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인생을 풍부하게 해 준 것들을 알아가며 즐거워했던 나의 모습. 그리고 지금 네가 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며 배우는 모습.
그 모든 것이 지름길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엔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조금은 생긴다. 너와 내가 닮아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