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하며 살다.(1편)

마땅히 그래야 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by 상처입은 치유자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여림심연(如臨深淵)하고, 여리박빙(如履薄冰)하라."

(전전긍긍하며, 깊은 연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을 밟는 듯하라.)-시경


"예민함"을 인간화하면 그것이 "나"라는 셀프로 나타날 것이다. 나의 경계를 통과해 들어오는 자극의 진동을 최대로 증폭시키는 하이테크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1. 아이의 표정에서 과거의 나를 보다.

우리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 내가 할 일 다 해서 기뻐요."

"우와~! 너라면 그럴 줄 알았어!!"


나의 최선의 반응에 아이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진다.

"헤헤..." 억지로 웃음소리를 내는 아이의 소리를 듣는다.


'실망했나?' 이 생각과 함께 나는 나의 과거로 끌려 들어간다. 그 당시 나의 모든 상황이 증폭되어 나는 그 속에 이미 들어가 있다.


내가 철봉에 매달려 내 몸을 한 바퀴 힘차게 돌렸다.

"엄마! 나 이렇게 돌 수 있어!"

"어... 잘했네."


내가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다. '울어볼까?' 그런다고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실망감이 흥미를 밀어내 버렸다.


들떠 있던 기분을 그대로 보내긴 아쉬워서 내 기분이 민망하지 않게 두어 번 더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엄마 옆으로 갔다. 엄마는 여전히 엄마 일을 하고 계셨다.


오해는 마시길. 우리 부모님은 나를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온다. 나는 아이가 혹시나 이런 기분일까.. 전전긍긍한다. 그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 원인이 되고 싶지는 않다.


#2. 사무실 속 보이지 않는 동굴

사무실.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

"어제 ***에 잘 다녀오셨어요?"

스몰토크에 유난히도 약한 나는 기억을 쥐어 짜내 상대의 안부를 묻는다.

"네~"

엥? 이게 끝이라고.


'나와의 연결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구나.'

이 생각은 나의 존재를 다시 구석으로 밀어낸다. 여기서 더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갈지 그 끈을 놓쳐버린 나는 다시 나의 안전한 동굴로 숨어들어온다.


"탁탁탁~~ 탁탁탁"

이어지지 못한 대화의 민망함을 키보드 소리로 달랠 수 있길. 하지만 커지는 키보드 소리와는 달리 나는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나의 전전긍긍은 언제나 나를 갉아먹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나의 경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작은 진동을 저리도 크게 증폭하는 필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전전긍긍의 완전 정반대로 얕은 연못에 임하고, 두꺼운 얼음 위에서 발걸음을 밟는 그저 편안한 삶이길 원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의 예민함은 축복이 아니라 고역이었다. 나의 바람과 달리 언제나 내 삶은 세상의 떨림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내가 얽어 놓고 연결한 끈을 타고 넘어오는 수만 가지 진동으로 생각이 많아지는 삶을 살았다.




#1. 아이에게 맡겨보다.

아이가 원하는 반응을 못 받아 실망할 수도 있지. 그 실망감을 아이가 스스로 겪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렇게 독립하도록 도와주도록 전전긍긍하는 것이 내 할 일이겠지.


#2. 그들의 사정이 있을 수도.

동료는 일 때문에 바빠서 일에 집중하고 싶을 수도 있고, 어제의 일이 유쾌하지 않아 말하고 싶지 않아 단답으로 대답했던 것일 수도 있다. 상대의 반응이 나의 존재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전전긍긍. 이 필터를 가지고 있던 이유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싶어서였다. 나는 자주 외부의 자극을 예민하게 느꼈다. 그래서 이 민망함과 존재의 초라해짐을 상대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컸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내가 아무리 전전긍긍하며 조심해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 않는가? 내가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다짐도,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도 모두 나의 오만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저 나의 전전긍긍이 모두에게 가장 균형이 되는 선택이길 바랄 뿐이다.


아이는 아이에게 전달된 진동을 아이 나름대로 잘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 내가 철봉을 두어 번 더 돌고 키보드 치는 것으로 민망함을 처리했듯 말이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겠지만, 이제는 기꺼이 전전긍긍하며 살고 싶다. 이 섬세한 필터가 타인을 향한 가장 균형 잡힌 배려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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