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전전긍긍(2편)

너에게 닿기 위한 포털

by 상처입은 치유자

# 과거, 어린 중학생인 나와의 조우.


"이번에 너네 반 00가 성적이 그렇게 올랐다면서?"


"아니~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건데? 뭐 나는 못했단 얘기야? 걔는 그래도 ***은 나보다 못했잖아. 다 잘했을 리 없어."


현재는 과거로 초대하는 시간여행의 포털 같다. 오늘의 사건이 나를 과거로 가는 포털을 열었고, 나는 인식하기도 전에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나의 시험성적표 속 숫자들은 내 기대를 매몰차게 져버렸다. 성적으로 나의 능력을 증명하려던 나의 시도는 그렇게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 당시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저 누군가 말을 안 해도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매우 어린 중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말을 내 중심으로 해석하며, 왜곡하고 심지어 상대를 깎아내리고 있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엄마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도 없다는 게 한탄스럽다.


# 포털을 열어버린 현재의 사건


"엄마아~ 저.. 핸드폰 시간 조금만 더 주세요. 공부할 거 알아볼 게 있어서..."

아이는 핸드폰 시간제한을 제안했다. 스스로 조절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을 그저 유튜브 알고리즘에 맡긴 후에 부탁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시험공부 시작한다고 스스로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은 족히 지난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험공부에 검색이 필요하면 핸드폰 시간을 조절해서 남겨놨어야지!"

자.. 너무도 옳지만, 마주하기 싫은 엄마의 말에 대한 반응을 아이가 발사할 시간이다!


"아니... 그냥 싫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 싫어. 좀 놀 수도 있는 거지"

자기 방 안으로 들어며 말을 했다.

'읭? 난 놀았다고 한 말이 아닌데...'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단지 핸드폰에 대한 지적 때문이 아닐 것이다. 아이는, 시간 조절을 못한 자신에 대해 항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00. 이리 와봐."

터벅터벅.

"말도 안 끝났는데 그렇게 가는 건 예의가 아니야. 그리고 이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말이야."

"그래도 싫어."


방에서 퉁탕거리는 소리로 아이의 감정을 들을 수 있었다. 뭐라고 투덜거리는 말소리가 나의 피부에 가시처럼 꽂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참... 굳이 저 말을 가시로 받아들여 내 피부에 꽂을 것은 뭐람!!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 어떤 방식이든 이젠 사람을 향하진 않는다. 아이가 발전하고 있다.




# 과거의 내가 속삭이는 진실


과거로의 여행 속 중학생인 내가 나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속삭인다.


"지금 아이는 약속을 못 지킨 자신에게 실망 중이야. 잘 알고 있거든. 오늘을 알차게 보내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을 지켜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과부하된 상태이지. 그저 '괜찮다. 이제부터 하면 된다.'라고 엄마의 따듯한 말 한마디로 자기의 힘듦을 알아주길 바랐을지도 몰라. 과거의 어린 중학생이 부끄러운 모진 말속에 진심을 숨겼던 것처럼 말이야. 아직 아이는 엄마의 옳은 말까지 처리하기엔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 거야."


과거로 연결된 끈을 타고 전해준 이야기는 전전긍긍하는 나를 통해 큰 진동이 되어있었다.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길 바라면서.


퉁탕거림과 감정을 섞은 말들이 아이가 지금 최선을 다해 자기를 달래고 있는 순간임을 알아줘야겠다. 새어 나오는 감정도 어쩌면 아이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잘 내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잠시 가만두면, 어떻게든 평정을 찾아볼게요.'

라며 말이다.


# 기꺼이 전전긍긍


이것은 예절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아이가 과부하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법으로 처리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


'엄마도 그랬어. 그 시간을 지나 이젠 엄마도 엄마만의 방식을 찾고 있지. 심지어 지금도 찾는 중이란다. 과정이 쉽진 않았어. 그래도 지금 여기 엄마 품에서 충분히 실수하렴. 이 실수와 후회가 쌓여서 그 길을 피할 수 있는 현명한 어른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믿고 있어."


나의 전전긍긍은 이제 아이를 향한 의심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의 무게를 이겨낼 때까지 그 곁을 지키는 '고요한 관측'이다. 나는 오늘도 기꺼이, 이 아름답고 정교한 살얼음판 위를 걸을 것이다.


하아... 쉽지 않다.

인격체를 키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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