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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서 Jan 14. 2020

노 배드 패런츠 존

노 키즈존의 문제점을 보완한 노 배드 패런츠 존이 생겼다고 한다. 말만 살짝 바꾼 것인데 넷 상의 반응은 폭죽이라도 터트릴 듯 대환영이다. 아이들을 욕하는 게 아니라 부모들이 문제인 거라는 논리를 폈던 네티즌들은 부모들이 지 자식 시끄러운 줄도 모른다며 비난 일색이다. 안다. 어떻게 모르는가. 제일 괴로운 사람이 부모인데..

참 이상한 논리다. "아이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부모는 그래선 안돼"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자유분방함을 이해하는 넓은 아량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 아이가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한다면, 부모는 절대로 가만있으면 안 된다. 반대로 아이가 그래도 되는 행동을 한다면, 부모도 그저 지켜보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부모는 그러면 안된다고 입을 모으는 그들의 말은 결국, "아이들의 거슬림을 용납할 수 없으나 그들은 스스로 자제할 수 없으니 부모가 처리해. 그러지 못하는 '나쁜 부모'는 공공장소에 오지 마. 그런데 미리 구분할 수 없으니 그냥 아이들은 출입 금지야."이다. 결국 "아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니까 오면 안 돼."일뿐인데 교묘하게 자신들의 속 좁음을 피해 가며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노 키즈 존'이 나았다. 여기엔 아이들은 모두 다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어떤 제너럴함이 있다. 전달하는 바도 분명하다. 수용 가능하다! 주인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할 수 있고, 나 또한 환영받지 못할 곳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그런데 나쁜 부모는 들어오지 말라? 그럼 착한 부모는 받아줄 것인가? 착한 부모 나쁜 부모 어찌 구분할 것이며, 착한 부모라고 해서 들어가면 혹여나 민폐가 될까 바짝 긴장해야 할 텐데, 누가 들어가겠는가. 또 나쁜 부모라도 아이가 함께 있지 않으면 들어가도 될 것이니, 결국 아이만 안된다는 뜻이면서 무슨 말을 이상하게 꼬아서 마치 아이들은 괜찮다는 '척'을 하고 있는가.
이쯤 되니 억한 심정이 생긴다. 자식을 갖지 않겠노라는 선언이 흔한 요즘, 이 분위기를 봐선 애 낳는 사람이 바보인 것 같다. 혹은 자기들이 원해서 낳았으니 알아서들 하시오, 단 나에게 피해 주지 말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할수록 분하다. 경제 인구가 날이 갈수록 줄어 나라가 위태로울 지경이라고 하는데, 그럼 내가 문자 그대로 죽을힘 다해 키운 내 자식이 머지않아 우리나라 경제를 버티며 아이 없이 편하게 살아온 사람들 의 노후까지 책임질 것 아닌가. 고생은 내가 다 했는데, 그 혜택은 모두가 누린다면..? 더구나 힘들 때 도와주고 응원해주긴 커녕, "좀 조용하게 해라, 내가 낸 세금 니 자식 키우는데 들어가는 거 싫다." 했던 사람들이 아닌가..
해마다 출산 및 육아를 지원하는 공적자금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것저것 가짓수만 복잡해지고 막상 나에게 해당되는 건 거의 없다. 매달 10만 원씩 주는 거? 통장에 스치지도 않는다. 임신했다니까 60만 원 주는 거, 기형아 검사비가 65만 원이다. 그거 한 번이면 끝난다. 이거 준다고 아이 안 낳을 사람이 낳을 일은 없다. 코웃음만 칠 뿐..
예를 들어 아이가 둘 있는 부모가 싱글 못지않은 삶의 질을 누리려면, 수입이 최소 네 배쯤은 더 필요하다. 먹는 거 입는 거는 아이나 어른이 비슷한데, 교육비가 그만큼이 더 들고, 무엇보다 집이 두 배 더 커야 한다. 그런데 일 할 시간은 절반 이하로 준다. 그러니까 시간 대비 8배는 더 벌어야 하는 거다. 쉽게 설명해서 그렇다. 그런데 부모라고 해서 8배나 더 벌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리 없으니, 부모의 삶이 가라앉는 것이고, 예전에는 모두 다 그러해서 차이를 몰랐으나 지금은 선택적 조건이 되어 다름이 뚜렷해진 것이다.

그런데 늘상 나오는 뉴스는 버려진 아이, 학대당한 아이와 가해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이집 학대 사건들이다.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부모와 보육교사들의 이야기는 없다. 한 번도 본 적 없다.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벌떼처럼 모여 온갖 비난을 쏟아내는 만큼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안쓰럽다면 방법을 좀 바꿔보면 어떨까. 못하는 사람들 비난하는 것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으로 말이다.

현재 상태라면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보육교사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그분들이 얼마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인지 안다면 처우를 그리 할 수 없다. 애 하나만 봐도 힘든데, 5살 아이를 혼자서 15명..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상황에 맞게 아이들의 환경을 제약하는 등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고생의 크기는 막상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모른다. 식당에서 편하게 밥을 먹는 것이 꿈같은 일이 되는 상황을 자유인들께서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쉽게 내뱉는 말들에 무슨 생각이 담겨있는지 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들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무지해서 그러는 것이다.

동시에 신생아 유기나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도 나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한다. 육아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내심과 체력을 요한다. 사회가 육아의 고생스러움을 알아주고 더 적극적으로 육아가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에 준하는 보상 해준다면, 그 끔찍한 죽음들을 극히 예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확한 통계나 빅데이터 같은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확신한다. 물론 출산율도 올라가서 인구 때문에 국가가 위태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어린 부부가 7개월 아기를 방치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연한 비난의 화살이 그들에게 마구 꽂혔다. 그런데 엄마는 18살, 아빠는 21살이었다. 엄마가 임신했을 당시엔 16살이었고, 만 나이로 계산하면 14살이었을 수도 있다. 아니라 해도 15살이다. 아빠는 18살.. 이들에게 갓난아기를 낳고 키우는 막중한 임무를 맡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회는 아무 잘못이 없을까? 도움이 아니라면 교육이라도 해줬어야 하는데, 그들은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오히려 교육의 현장을 떠나야 했다. 15살에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기까지 했다는 건 애초에 부모에게서 조차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 청소년들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이다.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둔 건, 너무 한 것 아닌가.
돈도 필요하고 교육도 필요하다. 서른이 넘어 엄마가 된 나도 육아 서적과 강의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국가 지원을 부지런히 찾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들에겐 무엇보다도 응원이 필요하다. 그냥도 힘들어서 눈물이 나는데, 좋은 소리 한마디 듣지 못하고 공공장소에서는 눈총을 받고,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간 애 한번 키워보지도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온갖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하니, 아이들의 이쁜을 모습 보며 위로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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