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X Designer가 되고 싶다
현대 음악 산업은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있다. 전통적인 음악 생산과 소비 구조에서 작곡가는 완성된 음악적 텍스트를 창조하고, 청중은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일방향적 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고전적 창작-소비 구조를 해체하고 있다.
Walter Benjamin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논한 '아우라(Aura)'의 소실 개념을 음악 영역에 적용해보면, 생성형 AI는 음악의 '원본성'과 '유일성'이라는 개념을 더욱 근본적으로 문제화한다. 음악이 더 이상 고정된 완성품이 아니라, 알고리즘적 프로세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성되는 '살아있는 창작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John Dewey의 경험론적 미학과 맥을 같이 한다. Dewey는 「경험으로서의 예술(Art as Experience)」에서 예술 작품의 의미가 창작자의 의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음악은 이러한 상호작용성을 기술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사용자가 단순한 청취자에서 공동창작자로 전환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Alvin Toffler가 「제3의 물결」에서 제시한 '프로슈머(Prosumer)' 개념은 생성형 AI 기반 음악 경험을 이해하는 핵심적 틀을 제공한다. Toffler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경계가 해체되어, 개인이 동시에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예견했다. 음악 영역에서 생성형 AI는 이러한 프로슈머 모델을 기술적으로 실현하며, 사용자가 개인의 생체 신호, 환경 데이터, 행동 패턴을 통해 실시간으로 음악 창작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서 개인화된 음악적 경험의 공동창작자로서의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작업들을 계속하면서 내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었다. 음악을 만들지만, 그보다는 음악적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용자가 어떤 감정의 여정을 거칠지, 어떤 순간에 어떤 상호작용을 할지, 그 경험의 전체적인 흐름을 구상하는 것이 내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역할을 정의하기 위해 'MX Designer'라는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Music eXperience Designer, 즉 음악 경험 설계자. 이는 전통적인 작곡가나 사운드 디자이너의 역할을 확장한 것으로, 생성형 AI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창작자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작업들,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들이 모두 이 정의 안에서 명확해졌다.
MX Designer로서 나는 감정적 서사의 건축가가 되고 싶다. 건축가가 공간을 설계하듯, 나는 시간 속에서 전개되는 감정의 공간을 설계한다. "이 경험의 첫 30초 동안은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중간은 몰입감을 높이며, 마지막 1분 동안은 여운을 남기자"는 식으로 전체적인 감정 지도를 그린다.
이러한 설계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이 먼저인지 영상이 먼저인지와 같은 순서가 아니다. 오히려 총체적인 영감에서 출발하여 음악과 영상, 상호작용과 반응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통합적 접근이 핵심이다. 하나의 감정적 비전이 동시에 청각적, 시각적, 체감각적 요소들로 구현되면서, 사용자에게는 분리된 미디어의 조합이 아닌 하나의 일관된 경험으로 전달된다.
최근에는 AI로 생성한 음악과 영상을 결합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음악에 맞는 영상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사용자의 인지와 감정에 영향을 미칠지 치밀하게 계산한다. 어떤 색감이 특정 선율과 만났을 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지, 어떤 움직임이 리듬감을 극대화하는지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b0FDhQvSVY
MX Designer가 되어간다는 것은 기술과 감성 사이의 경계에서 작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I 모델의 파라미터를 조정하는 기술적 이해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예술적 감각도 요구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정밀함과 음악적 직관의 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창작이 일어난다.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설렘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기존 음악계의 관습과 충돌하며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이다.
음악이 감상에서 경험으로 전환되는 이 시대에, 나는 그 변화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실험하고 있다.
사용자가 더 이상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 공동창작자가 되는 음악 생태계. 기술과 예술이, 창작자와 감상자가,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새로운 창작 패러다임.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실현하는 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MX Designer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 정체성을 통해 음악이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서,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경험 매체가 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