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얼굴을 AI로 복원하지 마세요

선명해질수록 희미해지는 기억의 역설

by 류임상

얼마 전, 오래된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저해상도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 보급 초기에 촬영된 640×480 사이즈의 작고 흐릿한 이미지였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AI 사진 복원 앱에 넣어보기로 했습니다.


기술의 성능은 놀라웠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자, 뭉개져 있던 이목구비와 흐릿한 배경이 4K급 화질로 선명하게 변환되었습니다. 피부의 질감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기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고해상도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을 들여다볼수록 기이한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진은 분명 선명해졌는데, 정작 그 속의 인물은 제가 알던 그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1 복원인가, 대체인가


복원된 사진 속 얼굴은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AI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AI 업스케일링 알고리즘은 본질적으로 확률적 추론(probabilistic inference)에 기반합니다. 흐릿한 이미지를 보고 과거의 '팩트'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수억 장의 학습 데이터에서 도출된 통계적 패턴을 참조하여 "가장 그럴듯한" 픽셀값을 생성하는 것입니다.


뭉개진 눈매가 그 사람 특유의 표정이었는지, 단순히 초점이 나간 것인지 AI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특정 개인의 고유한 생체적 특징—Loss이 있는 표정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 개인 특유의 피부 질감, 비대칭적 안면 구조—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 데이터의 평균치로 수렴하는 결과물을 산출합니다.


그 결과, 사진 속 인물은 나의 지인이 아니라 데이터가 빚어낸 '평균적인 미남/미녀'로 대체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것은 "복원(restoration)"이 아닌 "생성(generation)"이며, 원본과의 동일성(identity)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2 빈 공간이 사라진 자리


우리가 오래된 사진을 보며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사진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인지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회상(recollection)은 저장된 정보를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이때 표정이 이랬었지", "이날 분위기가 참 좋았지" 하며 뇌가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흐릿한 윤곽선과 보이지 않는 디테일, 그 '정보의 공백'은 관찰자의 기억이 개입할 여지를 남겨둡니다.


반면, AI가 픽셀 하나하나를 명확한 정보값으로 채워버린 고해상도 이미지 앞에서는 이러한 인지적 참여가 차단됩니다. 명확하게 규정된 픽셀값은 기억의 재구성 과정에 개입하여, 관찰자 고유의 기억 표상(memory representation)을 외부에서 주입된 정보로 대체할 위험이 있습니다.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기억의 고유성은 휘발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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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K 시대, 일부러 노이즈를 섞는 이유


저는 유튜브에서 AI를 활용해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최신 생성형 AI 기술을 다루지만,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화질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과정을 거칩니다.


미드저니(Midjourney)가 생성한 매끈하고 결점 없는 이미지 위에 필름 그레인(film grain)을 입히고, 채도를 낮추며, 초점을 살짝 흐립니다. 때로는 색수차(chromatic aberration)까지 추가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나치게 깨끗한 디지털 이미지는 차갑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지각은 무결점의 매끄러운 표면보다 적절한 수준의 노이즈가 포함된 이미지를 더 '실재적'으로 인식합니다. 영화 편집 이론가 월터 머치(Walter Murch)가 지적했듯, 기술적 완성도와 정서적 몰입 사이에는 반드시 정비례 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기술은 해상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실재감과 감동은 종종 그 결핍과 노이즈 속에 존재합니다.


#4 흐릿한 것은 흐릿한 채로


다시 원본 사진을 봅니다. 픽셀이 튀고 디테일이 뭉개진 조악한 사진이지만, 오히려 그 흐릿함 속에 당시의 공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선명하게 확인하고 보존하려는 '고해상도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의 영역에서만큼은 선명함이 곧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든 시각 정보를 고해상도로 "명확화"하려는 기술적 지향이, 기억의 고유성과 개인적 의미를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은 숙고할 만합니다.


데이터로 매끄럽게 덧칠된 타인의 얼굴보다는, 흐릿하더라도 내 기억이 스며들 틈이 있는 원본 그대로가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가끔은 AI의 '보정'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춰야 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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