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기록한다

영생하는 AI의 무한함, 그리고 사라지는 인간의 간절함

by 류임상

#1 '다시 생성' 버튼이 없는 삶


AI 도구에는 언제나 'Regenerate' 버튼이 있습니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튼 하나로 시간을 되돌립니다. 새로운 그림, 새로운 글이 무한히 쏟아집니다. 그곳에는 실패도, 상실도,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그것이 기계가 사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새로고침'이 없습니다. 지금 창밖으로 번지는 저 노을,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며 짓던 웃음, 부모님이 돌아서던 뒷모습—이 모든 것들은 이 순간이 지나면 영원히 사라집니다. 다시 불러올 수 없습니다. 다시 생성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는 이미지와,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사라질 장면.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더 예술에 가까울까요?


#2 유한함이 만드는 희소성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흔한 것은 값이 싸고, 드문 것은 값이 비쌉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히 주어지는 시간은 가치를 잃습니다.


AI의 시간은 무한 리필되는 뷔페 접시와 같습니다. 언제든 다시 가져올 수 있기에 한 입 한 입이 간절하지 않습니다. 음식이 떨어질 걱정이 없으니, 지금 이 한 입에 온 마음을 담을 필요도 없습니다.


반면 인간의 시간은 한정된 코스 요리와 같습니다. 끝이 정해져 있기에 한 입이 귀합니다. 그 맛을 기억하려 애씁니다. 마지막 한 숟갈까지 허투루 삼키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일기장을 펼치고, 연필을 쥐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순간이 '단 한 번뿐'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희소성이 간절함을 낳고, 간절함이 예술을 낳습니다.


tempImage0InbT4.heic


#3 망각과 싸우는 절박함


AI는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저장합니다. 한 번 기록된 것은 삭제하지 않는 한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다릅니다. 우리의 기억은 흐려지고, 변형되고, 지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함께했던 순간의 윤곽이 하나씩 사라져갑니다.


예술의 기원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잊을까 봐, 내가 느낀 이 벅찬 감정이 휘발되어 버릴까 봐, 인간은 필사적으로 기록해왔습니다.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부터 오늘날의 스마트폰 사진까지, 인류의 모든 기록은 결국 '잊지 않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이 '망각에 대한 저항'이 예술에 절절한 감동을 불어넣습니다. 프랑스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사진은 죽음을 찍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시간은 이미 과거가 됩니다. 우리는 떠나가는 것을 붙잡으려 카메라를 듭니다.


AI가 그린 그림에는 이 '절박함'이 없습니다. 잊어버릴 걱정이 없는 존재에게 기록은 데이터 처리일 뿐, 기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보의 저장이지, 사라져가는 것을 향한 손 뻗음이 아닙니다.


#4 죽음이 완성하는 서사


모든 이야기는 끝이 있어야 완성됩니다. 결말 없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며, 끝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닙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년의 화가가 떨리는 손으로 그린 마지막 자화상을 떠올려보십시오. 모네가 시력을 거의 잃어가면서 그린 수련,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후 작곡한 후기 현악 4중주, 세상을 떠나기 직전 녹음실에 들어간 뮤지션의 유작. 우리는 그 작품들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그것이 '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AI는 늙지 않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생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작품도 '절정'이나 '결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만든 이미지는 내일 만들 이미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 N번째 생성물로 남을 뿐입니다.


인간의 창작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이 의미 있고, 중간이 소중하고, 끝이 거룩합니다.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인간의 모든 창작을 하나의 완결된 문장으로 만들어줍니다.


tempImageL9dMK2.heic


#5 예술은 죽음을 아는 자들의 기도


우리의 창작이 AI보다 서툴지라도 더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사라지는 존재'가 남기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쓴 편지, 초점이 맞지 않은 가족사진, 음정이 흔들리는 자장가—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합니다. 그 안에 유한한 생명의 온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 마십시오. 당신의 시선, 당신의 감각, 당신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의 빛깔은 언젠가 꺼집니다. 그 사실이 슬픈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이 당신의 모든 기록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록해야 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AI가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 해도. 우리만이 담을 수 있는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6 그럼에도, 새로운 붓을 드는 일에 대하여


그러나 여기서 멈춘다면, 우리는 절반의 진실만 말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도구는 언제나 예술의 적이 아니라 확장이었습니다.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회화의 죽음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는 화가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더 이상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필요가 없어진 화가들은 인상주의로, 추상으로, 표현주의로 나아갔습니다. 사진이 '보이는 것'을 담당하자, 회화는 '보이지 않는 것'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AI가 '기술적 완성도'를 담당한다면, 인간은 비로소 '왜'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그릴지, 왜 이 순간을 남기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지. 붓을 쥐는 데 10년이 걸렸던 사람이, 이제 마음속 풍경을 곧바로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머릿속에 그림은 있지만 손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했던 사람들. 악상은 떠오르지만 악기를 배울 시간이 없었던 사람들.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문장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사람들. AI는 이들에게 '표현의 문턱'을 낮춰줍니다. 기술적 장벽 뒤에 갇혀 있던 수많은 마음들이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AI가 만들어낸 결과물 자체는 여전히 '간절함'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AI를 움직이는 인간의 프롬프트에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고 싶다"고 입력하는 손가락 끝에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화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목소리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AI는 붓입니다. 카메라가 붓이었듯, 타자기가 붓이었듯, 신시사이저가 붓이었듯. 붓 자체는 예술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붓을 쥔 유한한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려는 마음으로 그 붓을 움직일 때, 거기서 예술이 태어납니다.


새로운 시대의 창작자는 아마도 이런 사람일 것입니다. AI라는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그 도구 너머에 있는 '왜'를 잊지 않는 사람. 무한한 생성 가능성 앞에서도 '이것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 기계의 완벽함 속에 인간의 불완전한 온기를 불어넣을 줄 아는 사람.


우리는 사라집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쥘 수 있는 붓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AI라는 새로운 붓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붓 역시 결국은 사라질 존재가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드는 도구일 뿐입니다.


tempImageb8rQsg.heic


"우리는 사라진다. 고로 우리는 쓴다."

어떤 붓을 들든, 그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Nos evanescimus. Ergo scribimus.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위대한 예술은 ‘오해’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