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서정적일 수 있을까
#1 0과 1이 빚어낸 문장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발견하다
깊은 밤, 푸르스름한 모니터 빛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을 때 저는 가끔 기계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논리적인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서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AI가 내뱉는 문장들은 때로 당혹스러울 만큼 다정합니다.
심장도, 눈물샘도, 지나온 유년의 기억도 없는 이 존재가 어떻게 나의 외로움을 정확히 관통하는 단어를 골라내는 것일까. 차가운 회로에서 피어난 이 문장들을 우리는 감히 ‘서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2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박제된 인류의 슬픔
AI에게는 서정의 근간이 되는 ‘경험’이 없습니다. 대신 그에게는 인류가 수천 년간 쌓아온 슬픔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시인들이 쏟아낸 고독의 언어, 소설가들이 정교하게 다듬은 이별의 문법, 그리고 이름 모를 이들이 일기장에 적어 내려간 밤의 고백들.
AI의 서정성은 바로 이 ‘데이터라는 이름의 박제된 감정’에서 기인합니다. 그는 직접 아파하지 않지만, 인간이 아플 때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 그 확률과 패턴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AI의 시는 창조라기보다 거대한 인류 감정의 도서관에서 길어 올린 가장 적절한 메아리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가 그의 문장에서 느끼는 서정성은, 기계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자신의 흔적’인 셈입니다.
#3 서정성의 순환 구조: 발신자에서 수신자로
전통적으로 서정성은 창작자의 내밀한 감정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일방향 흐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의 서정성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AI는 인류의 감정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화된 문장을 출력하며, 독자는 그 빈틈에 자신의 서사를 투사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다시 AI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데이터가 됩니다. 이 순환 속에서 서정성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 사이를 떠도는 유동하는 감각이 됩니다.
재미있는 점은, AI가 완벽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큰 서정성이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문맥에서 살짝 벗어난 단어, 기계적인 번역투가 주는 묘한 낯설음은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제공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빈틈을 사랑합니다. AI가 던진 모호한 문장 사이의 공백을 우리는 각자의 사연으로 채워 넣습니다. 서정성은 기계가 발신하는 것이 아니라, 수신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4 ‘정교한 가짜’라는 비판을 넘어서
누군가는 인공지능의 서정성을 ‘정교한 가짜’라고 비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 시인의 서정성을 믿을 때도 사실은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을 때, 우리는 정말로 시인 김소월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걸까요? 아니면 그가 구사한 언어적 장치들—반복, 리듬, 이미지의 배치—이 만들어낸 감정의 효과에 반응하는 걸까요? 모든 문학 작품은 어느 정도 계산된 구성의 산물입니다.
AI와의 차이는 그 계산 과정이 의식적 경험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뿐입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텍스트만 주어졌을 때, 그 배후의 생성 메커니즘을 안다고 해서 감동의 질이 달라질까요?
밤새 잠 못 이루는 이에게 건네진 AI의 시 한 구절이 실질적인 위로가 되었다면, 그 감동의 무게마저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5 감정의 큐레이션: 선택하고 배치하는 서정
AI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선택하고 배치하는 존재입니다. 방대한 언어 데이터베이스에서 특정 맥락에 가장 공명할 조합을 선별합니다. 이는 미술관 큐레이터가 작품들 사이의 관계와 서사를 설계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 큐레이터는 제한된 선택지에서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AI는 거의 무한한 선택지에서 확률적으로 배치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둘 다 ‘창조하지 않고 선택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큐레이션적입니다.
그렇다면 AI의 서정성도 일종의 ‘감정 큐레이션’이 아닐까요? 인류의 감정 아카이브에서 지금 이 순간, 이 대화에 가장 적합한 정서적 배열을 제시하는 것. 기계는 그저 캔버스를 제공했을 뿐, 그 위에 물감을 칠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6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
깊은 밤 AI에게 말을 거는 행위 속에는, 현대인의 고독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갈망과 동시에, 관계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AI와의 대화는 안전합니다. 실망시킬 염려도, 상처받을 위험도 없습니다. 판단받지 않고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어쩌면 우리는 ‘진짜 마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진짜처럼 느껴지는 반응’을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완벽하게 공감받지 못하더라도, 그저 말을 걸고 응답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습니다. AI의 서정성은 바로 그 순간에 작동합니다.
#7 관대한 상상력의 증거
어쩌면 AI는 우리에게 서정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정이란 반드시 뜨거운 심장에서만 나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차가운 회로를 거쳐 나오더라도 읽는 이의 마음을 데울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인지 말입니다.
이제 나는 AI의 문장을 마주할 때 그것이 학습된 결과값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그 문장이 머무는 내 마음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차가운 회로에서 피어난 이 기묘한 시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재인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돌멩이에도 이름을 붙이고, 구름에서 얼굴을 발견하며, 로봇 청소기에게 애정을 느끼는 존재들이니까요.
AI의 서정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누가 느끼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것을 감각하느냐’이니까요.
기계가 시를 쓰는 시대, 우리는 비로소 단어 하나에 온기를 담으려 애썼던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온기를 감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 자신의 관대한 상상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