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로 지은 노랫말이 우리의 귓가에 머물 때
#1 오선지에서 프롬프트 창으로
하얀 종이 위에 연필을 굴리던 작사가의 손이 이제 키보드 위를 맴돕니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그는 망설입니다. ‘슬픔’이라고 쳐야 할까, ‘새벽 3시의 빗소리’라고 쳐야 할까. 이 미세한 차이가 AI가 토해낼 수백 개의 문장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작사는 더 이상 단어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AI에게 ‘어떤 공기’를 만들어낼지 주문하는 설계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프롬프트 창은 새로운 오선지가 되었고, 그 위에 적히는 것은 음표가 아니라 분위기의 좌표입니다. 우리는 이제 감정을 그리는 대신, 감정이 숨 쉬는 공간을 설정합니다.
#2 장면을 설계하는 새로운 작사법
시를 쓸 때 프롬프트는 추상적이어도 괜찮습니다. “고독에 대해 써줘”라는 요청만으로도 AI는 무언가를 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사의 프롬프트는 훨씬 더 시각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사는 결국 누군가의 목소리로, 특정한 멜로디와 리듬 위에 얹혀질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이별의 슬픔을 써줘”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입력해보십시오. “새벽 3시, 빗소리에 섞여 들어오는 낮은 베이스 기타 리듬에 어울리는, 아직 버리지 못한 낡은 운동화 같은 가사를 써줘.” 이 문장 안에는 시간이 있고, 소리가 있고, 질감이 있고, 무엇보다 ‘장면’이 있습니다. AI는 이 장면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언어들을 찾아냅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작사가가 발휘해야 할 새로운 형태의 서정적 기획력입니다. 더 이상 직접 ‘비 내리는 거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대신 AI가 ‘비 내리는 거리’를 느낄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합니다. 연출가가 배우에게 대사를 던지듯, 우리는 AI에게 무드를 던집니다.
#3 킬링 파트를 고르는 안목
AI는 순식간에 스무 개의 후렴구를 만들어냅니다. 모두 문법적으로 완벽하고, 운율도 맞고, 심지어 제법 감정적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사람들이 샤워하면서 흥얼거릴 한 줄, 누군가의 카톡 상태메시지에 평생 머물 한 줄, 술 취한 밤에 떼창을 유도할 그 한 줄을 골라내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입니다.
AI가 생산자라면 인간은 최상의 감성을 선별하는 큐레이터이자 디렉터가 됩니다. 수십 개의 문장 중 어떤 것이 진짜 ‘꽂히는’ 가사인지 판단하는 안목, 이것이 곧 그 작사가의 정체성이 됩니다. 과거의 작사가가 빈 종이 앞에서 고민했다면, 지금의 작사가는 넘쳐나는 선택지 앞에서 고민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로 창작의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입니다.
이 선택의 순간에 발휘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취향입니다. 취향은 학습될 수 없고, 데이터화될 수 없으며, 알고리즘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AI가 아무리 많은 가사를 생산해도, 그것을 ‘이것이다’라고 지목하는 순간의 확신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영역으로 남습니다.
#4 기계가 발견한 낯선 운율
가사는 귀로 듣는 글입니다. 읽을 때와 들을 때의 리듬감이 다르고, 같은 단어라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집니다. AI는 언어의 통계적 배치를 통해 인간이 미처 생각지 못한 신선한 압운이나 리듬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랑’과 ‘그대’를 붙이던 자리에, AI는 ‘사랑’과 ‘창밖’을 배치합니다. 얼핏 어색해 보이지만, 멜로디에 얹으면 묘하게 귀에 걸립니다.
이것은 역설입니다. 인간의 관습적인 표현을 깨뜨리는 AI의 ‘기계적 선택’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더 세련된 가사를 탄생시킵니다. 우리는 감정을 따라 단어를 고르지만, AI는 음절과 음가를 따라 단어를 배치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후자가 더 아름답습니다. 감정보다 소리가 먼저일 때, 가사는 노래 안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습니다.
물론 이 협업이 성공하려면 인간이 AI의 제안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시 인간의 귀로 검증해야 합니다. 알고리즘이 제시한 리듬을 실제로 불러보고, 숨을 쉬어보고, 그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확인하는 과정. 이 과정에서 기계의 논리와 인간의 감각이 만나 가사는 비로소 ‘노래’가 될 준비를 마칩니다.
#5 목소리로 완성되는 노래
가사는 텍스트로 존재할 때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실려 불릴 때 생명력을 얻습니다. 종이 위의 문장은 침묵하지만, 노래 속의 문장은 숨 쉽니다. 가수의 떨림, 숨소리, 발음의 미세한 뉘앙스가 더해지는 순간, 가사는 더 이상 단어의 배열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이 됩니다.
AI가 쓴 가사일지라도, 그것을 부르는 가수의 숨소리와 그것을 듣는 청자의 눈물이 만나는 순간, 그 노래는 더 이상 기계의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 가사를 듣고 3년 전 헤어진 연인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을 예감할 것입니다. 같은 문장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다르게 울립니다. 이것이 가사가 가진 마법입니다.
기술은 단지 우리가 서로의 감정에 닿을 수 있게 돕는 가장 최신의 악기일 뿐입니다. 기타가, 피아노가, 신시사이저가 그랬듯이, AI 역시 우리가 노래를 만드는 방식을 바꿀 뿐 노래 그 자체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프롬프트 창에 입력된 0과 1은 결국 누군가의 목소리를 거쳐 다시 인간의 언어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다만 이제는 기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