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그램의 선율을 붙잡는 법

기계적 촉각에 대하여

by 류임상

AI가 생성한 음악에는 무게가 없습니다. 90초의 연산 끝에 화면에 나타난 wav 파일은 하드디스크의 미세한 자성을 바꿀 뿐, 손에 잡히지도 공간을 점유하지도 않습니다. 20년 동안 캔버스의 묵직한 무게를 견디고 액자의 모서리를 맞추며, 전시장의 조도와 습도를 고민하던 저에게 이 ‘무게 없음’은 때로 낯선 허무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기계의 ‘몸’에 더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1 첫 번째 접촉: 맨몸의 음악


음악의 시작은 방대한 데이터의 바다를 유영하며 AI가 갓 구워낸 따끈한 트랙을 선택합니다. Suno에서 방금 생성된 곡을 MacBook Pro 스피커로 처음 듣는 순간, 저는 선율의 윤곽만 확인합니다. 베이스는 존재하지 않고, 고음은 얇게 퍼집니다. 마치 작품 사진을 모니터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구도와 색감의 대략적 정보만 파악할 뿐, 캔버스의 질감이나 물감의 두께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화면 속 소리 차량은 선명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만져지지 않는 ‘정보’의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 곡이 쓸 만한가?“만 판단합니다. 이 0그램의 데이터를 받아내어 실체로 만들기 위해, 7~8개의 트랙으로 음파를 나누고, 새롭게 믹싱을 하며 악기를 추가합니다. 공간감을 더하기도 하고, 어떤 소리는 여러 음역대를 조정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모니터링을 위해 저는 책상 위 차가운 금속 몸체를 가진 DAC를 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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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첫 번째 육체: 무게중심의 탄생


전원을 켜면 장비에서 미세한 열기가 피어오릅니다. 손가락 끝에 닿는 볼륨 노브의 묵직한 저항감은 디지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귀한 물리적 마찰입니다. 저는 이 노브를 돌리며 비로소 제가 음악을 ‘소유’하고 ‘감상’할 준비가 되었음을 실감합니다. 이것은 저의 감각을 지키는 물리적 방어선과도 같습니다.


DAC를 거치는 순간, 0과 1이 전압으로 변환되며 음악에 무게중심이 생깁니다. 특히 베이스 라인이 비로소 “바닥”을 만듭니다. 보컬의 숨소리, 리버브의 꼬리가 선명해집니다. 같은 파일이지만 이제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닙니다.


헤드폰 앰프를 거치며 달라지는 것은 음량이 아니라 밀도입니다. 각 악기가 독립적인 “공간”을 갖기 시작합니다. 드럼의 타격감이 귓바퀴를 직접 때리는 물리적 압력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오픈형 헤드폰을 통해, 소리는 머리 안에 갇히지 않고 방 안에 펼쳐집니다. 마치 작은 스튜디오에서 연주자들이 제 주변에 배치된 느낌입니다. AI가 생성한 현악기의 배음들이 공기 중에서 서로 간섭하며 살아 움직입니다.


이 조합으로 들었을 때 저는 비로소 “이 곡이 완성되었다”고 판단합니다. 미술관으로 치면 작품을 전시장 벽에 걸고 조명을 맞춘 상태입니다.


#3 두 번째 육체: 이동하는 공명실


우리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물질에서 해방될 것이라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AI 음악을 깊이 다룰수록 저는 더욱 지독한 ‘물성 예찬론자’가 되어갑니다.


같은 곡을 차 안에서 들으면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됩니다. 밀폐된 공간의 물리적 반향 속에서 베이스가 차체 전체를 울립니다. 이동하는 풍경과 결합되며 음악이 시속 60km의 속도감을 얻습니다. 헤드폰의 섬세함은 사라지지만, 대신 신체 전체가 스피커가 됩니다. 제가 만든 어떤 멜로디는 책상에서보다 운전 중에 더 완벽하게 들립니다. 마치 그 음악이 “이동”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처럼. 이것은 작품이 특정 공간—갤러리냐 야외냐—에서 더 빛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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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 번째 육체: 통제할 수 없는 변주들


0과 1의 조합인 코드가 전선을 타고 흘러 전압으로 바뀌고, 그 전압이 앰프의 회로를 거치며 증폭될 때 소리는 비로소 ‘부피’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데이터가 아닙니다. 내 방의 공기를 밀어내고, 책상의 결을 울리며, 저의 피부에 실시간으로 부딪히는 물리적인 압력입니다.


하지만 제 YouTube 채널 구독자들은 각자 다른 육체 속에서 같은 음악을 경험합니다. 스마트폰 스피커로 들을 수도 있고, 무선 이어폰의 압축된 블루투스 코덱으로 들을 수도 있고, 값비싼 홈시어터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YouTube 업로드 전 믹싱과 마스터링 단계에서 고민합니다. 저음을 얼마나 강조할 것인가? 스마트폰 스피커는 저음 재생이 약합니다. 다이내믹 레인지를 얼마나 압축할 것인가?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들려야 합니다. 보컬을 얼마나 전면에 배치할 것인가? 몰입도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시 순회전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의 고민과 같습니다. 서울의 화이트큐브에서 완벽했던 조명과 배치가 지방 미술관의 다른 천장 높이와 자연광 조건에서는 조정되어야 하듯이.


#5 역설적 육체: 불완전성의 회복


가끔 저는 일부러 음질을 떨어뜨린 버전을 만들어 듣기도 합니다. 비트레이트를 128kbps로 낮추거나, 오래된 라디오 필터를 씌우거나, 테이프 히스 노이즈를 추가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완벽한 디지털 음질은 때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날로그적 결함이 오히려 인간적 온기를 부여합니다. AI의 과도한 정밀함에 시간의 흔적을 입힙니다. 이것은 새 캔버스에 일부러 크랙을 내거나, 디지털 프린트에 그레인을 추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완벽함 속에 불완전성을 심어 현실감을 회복하는 역설적 전략입니다.


#6 하나의 음악, 무수한 화신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결국 ‘작품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작품을 어느 높이에, 어떤 간격으로 두느냐에 따라 관객의 경험이 달라지듯, AI의 소리 역시 어떤 장비를 통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질감을 입습니다.


같은 wav 파일이지만, DAC를 거치면 정제된 스튜디오 경험이 되고, 차량 오디오로는 역동적 신체 경험이 되며, YouTube 압축 후에는 대중적 접근성을 얻고, Lo-Fi 처리 후에는 향수적 감성을 품게 됩니다.


어떤 날은 진공관의 배음을 닮은 따스한 전압으로, 어떤 날은 차가운 금속성 파동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AI가 만든 무색무취의 액체에 물리적 필터를 끼워 넣으며, 이 보이지 않는 창작물에 저만의 인장을 새겨 넣습니다.


하이파이(Hi-Fi) 장비를 고집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닙니다. 형체 없는 디지털 유령에게 단단한 육체를 부여하려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결국 제가 하는 일은 하나의 디지털 원본을 여러 물리적 화신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장비는 서로 다른 “전시 공간”이고, 저는 각 공간의 특성에 맞게 작품을 조율하는 큐레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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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닿는 것의 완성


결국 예술의 완성은 ‘닿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코드가 선율이 되어 저의 귓바퀴를 물리적으로 때리는 그 찰나의 타격감. 그 타격이 존재할 때만 저는 비로소 AI가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지금, 여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0그램의 선율”은 이렇게 금속과 자석과 공기와 귀를 거치며 비로소 무게를 갖춘 경험이 됩니다. 그리고 그 무게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육체를 입히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됩니다.


기술은 자꾸만 우리를 허공으로 띄우려 하지만, 기계의 묵직한 노브는 저를 다시 현실의 단단한 지면 위로 붙잡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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