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는 자와 '황홀경'을 빚는 자
#1 71세 노병이 던진 질문, "이 노래는 나의 것인가?"
최근 AI 음악 커뮤니티에서 한 노작가의 고백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평생을 다이브 바와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며 살아온 71세의 뮤지션 카슨(Carson)은 이제 악기 대신 AI로 곡을 만듭니다. 그는 밤잠을 설치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과연 이 결과물에 대해 내 공로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우리는 그저 앞선 예술가들의 피와 땀을 훔치는 거대한 절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은 AI를 도구로 삼는 모든 창작자가 마주해야 할 '예술적 진실성(Artistic Integrity)'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2 '주문'과 '창작'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
우리는 맛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그 요리를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버튼 하나로 완벽한 곡이 툭 튀어나온다면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 '쇼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카슨은 중요한 지점을 짚어냅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내 의도와 어긋날 때, 그 한계와 '씨름(Wrestling)'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그 고통스러운 개입이야말로 우리가 창작자라는 유일한 증거라는 점입니다.
결국 예술적 진실성은 도구의 종류가 아니라, 창작자의 '지문'이 그 과정에 얼마나 선명하게 남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더 본질적인 '기획과 맥락'에 집중하게 만드는 강력한 파트너가 되어줄 뿐입니다.
#3 창작을 지속하게 하는 유일한 연료, '예술적 황홀경'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단순히 AI와 씨름하는 것을 넘어, 우리는 이 도구와 함께하는 순간 '예술적 황홀경(Ecstasy)'을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의도한 감각과 AI가 뱉어낸 우연성이 맞물려, 상상조차 못 했던 소름 돋는 선율이 탄생하는 그 찰나의 전율. 그 황홀경을 맛보지 못한 채 효율성만을 쫓는 창작은 머지않아 시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 없는 데이터의 나열은 '노동'일 뿐 '예술'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전율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창작자에게 AI는 더 이상 차가운 기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한계를 부수고 새로운 형태의 예술로 나아가게 하는 거대한 파도입니다.
#4 제도권 교육이 가두었던 '야생의 상상력'을 깨우다
이러한 황홀경은 기존의 제도화된 교육 시스템에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야생의 상상력'을 해방시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해진 화성학, 정석적인 작법, '정답'이 있는 예술을 교육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AI라는 비정형의 도구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실수'나 '오답'으로 치부될 법한 파격적인 시도들을 가능하게 합니다.
악보를 읽지 못해도 머릿속에 흐르는 추상적인 이미지만으로 음악을 빚어내고, 장르의 경계를 파괴하는 혼종의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 이러한 시도들은 제도권의 성벽 밖에서, 오직 도구와의 깊은 교감을 통한 개인의 실험 속에서만 피어납니다. AI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혹은 교육받지 못했던 날것의 창작 본능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됩니다.
#5 우리는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다
지난 1년여간 매주 한 편씩 AI로 뮤직비디오를 만들며 제가 확인한 것은 기술의 우월함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우리가 얼마나 정직하게 존재하며, 그 안에서 어떤 황홀한 떨림을 발견할 수 있느냐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스스로를 단순한 '음악 제작자'가 아니라 '예술 경험 디자이너(Art Experience Designer)'라고 부릅니다. 제가 매주 6만 명의 구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한 곡이 아닙니다. 3분 동안 그들이 겪게 될 감정의 곡선입니다. 첫 10초의 시각적 충격, 30초 지점에서 터지는 비트의 전환, 2분을 지나며 슬며시 밀려오는 서정성, 그리고 마지막 20초간 여운으로 남을 정적. 이 모든 요소를 배치하고 조율하는 행위야말로 제가 설계하는 '경험'입니다.
AI가 생성한 수십 개의 후보곡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순서로 배열할 것인가, 어느 지점에서 시각과 청각을 충돌시킬 것인가. 이 선택과 배치의 연속이 바로 큐레이션이자 창작입니다. 완벽한 한 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요소들을 조합해 관객이 경험할 가능성의 건축물을 세우는 것. 이것이 제가 정의하는 새로운 예술가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이제 '기술자'를 넘어 예술 경험 디자이너로 거듭나야 합니다. 시스템이 규정한 예술가의 자격증에 연연하지 않고, AI가 열어준 무한한 잠재공간 안에서 자신만의 황홀경을 디자인하는 이들이 곧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창작에는 황홀경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새로운 예술의 입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떨림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예술은 결코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