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를 찾는 법
#1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들어설 때, 우리는 보통 캔버스 안의 세계에만 집중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부턴가 벽에 걸린 정적인 작품보다 그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뒷모습에 더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고정되지만, 그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의 표정과 몸짓은 매 순간 살아 움직이는 또 다른 예술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트 익스피리언스(Art Experience)’를 디자인하는 관점에서의 관찰이기도 합니다.
#2
우리가 미술관에서 겪는 경험은 사실 매우 정교한 ‘감정의 증강현실(Emotional AR)’과 같습니다. 작품이 현실(Reality)이라면, 그 작품을 바라보는 타인의 리액션은 내 시선 위에 실시간으로 덧씌워지는 가상의 레이어입니다. 내가 어떤 작품 앞에서 숭고함을 느끼려 할 때, 옆 관람객이 지루한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하는 것을 본다면 내 감정은 순식간에 ‘오염’되고 맙니다. 반대로 내가 무심코 지나치려던 소품 앞에서 누군가 경외에 찬 눈빛으로 멈춰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나의 감상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로소 ‘확장’되기도 합니다.
#3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묘한 우월감과 허무함 사이를 오갑니다. 도슨트의 설명 없이도 작가의 의도를 짚어낼 때, 혹은 타인이 놓친 은유를 발견할 때 우리는 지적인 승리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우월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지식이라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작품을 ‘해석’하는 나보다, 아무런 정보 없이도 작품 앞에서 덜컥 눈물을 흘리는 아이의 순수한 감각이 훨씬 더 본질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가진 지식은 도리어 감정의 날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4
문득 이런 고민이 듭니다. 왜 미술관에서는 극장에서처럼 거대한 감정의 파도를 함께 타는 기분을 느끼기 어려울까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우리는 낯선 이들과 같은 타이밍에 웃고 울며 기꺼이 ‘하나의 우리’가 됩니다. 하지만 미술관은 철저히 개인화된 시차를 가진 공간입니다. 각자의 보폭으로 걷고 각자의 시선으로 머무는 이 고립된 사유의 공간에서, 우리는 늘 연결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성벽을 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5
결국 미술관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취약성의 공유’에 있습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우월감을 내려놓고, 작품 앞에 선 한 인간으로서의 작고 솔직한 반응들을 서로에게 허용할 때 미술관은 비로소 거대한 스크린이 됩니다. 타인의 표정이 내 감상을 방해하는 노이즈가 아니라, 내가 혼자서는 결코 가닿을 수 없었던 감정의 고지로 나를 안내하는 이정표임을 인정하는 것. 그제야 우리는 각자의 영화를 찍으면서도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존재’라는 같은 장르의 관객으로 서로를 껴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