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은 파일이 될 수 있는가

포맷화된 양식(style)과 예술적 고유성에 관한

by 류임상

#1. 손이 아닌 버튼이 만든 '그 느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작가의 결을 흉내 내려면 오래 보고, 많이 실패하고, 손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고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저는 그림을 배우지 않고도 "그 느낌"을 만들었습니다. 붓 대신 버튼을 눌렀고, 손 대신 설정을 조절했습니다. 결과물은 그럴듯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완성된 이미지를 바라보는 순간,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잘 그렸는가?"도 아니고, "이것은 누구의 것인가?"도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스타일이 이토록 쉽게 옮겨 붙는다면, 스타일은 여전히 한 사람의 얼굴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까?


#2. 스타일의 포맷화 — 신체에서 파일로


우리는 오랫동안 스타일을 '개인의 흔적'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손의 떨림, 호흡의 리듬, 실패를 감수한 선택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지는 고유한 언어. 미술사에서 양식이란 곧 그 사람의 신체와 시간이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은 스타일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룹니다. 그것은 스타일을 신체의 산물이 아니라, 저장 가능한 규격(specification)으로 — 말하자면 파일 포맷처럼 — 취급합니다. 포맷은 압축됩니다. 포맷은 전송됩니다. 포맷은 호환됩니다. 포맷은 어디에든 적용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 하나가 있습니다. 포맷은 대체로 손실(lossy)을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MP3가 음악의 모든 공기를 담지 못하듯, '어떤 화가 같은 느낌'도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담지 못합니다. AI가 가져오는 것은 양식의 전체가 아니라 특징의 묶음(feature cluster)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특징의 묶음을 보고 "그 사람 같다"고 말합니다. 기표는 전달되었지만 기의는 절단된 상태 — 바로 여기서부터 혼란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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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방패에서 도구 상자로 — 작가성의 재배치


스타일이 포맷이 되면, 예술의 경제도 감상도 이동합니다. 이전에는 스타일이 일종의 방패였습니다. 모방의 비용이 높았기 때문에 고유성은 자연스럽게 보호되었습니다. 그러나 포맷화된 스타일은 더 이상 방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 상자에 들어갑니다. 누군가는 그 도구로 더 멋진 집을 짓고, 누군가는 그 도구를 팔아치우고, 누군가는 남의 집을 그대로 베낍니다.


같은 도구가 서로 다른 결과를 낳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결과물의 표면만으로 작가를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어떤 맥락에 놓았는가?", "어떤 책임을 감수했는가?"로 분화합니다. 작가성(authorship)은 손재주로부터 편집과 판단으로, 표현으로부터 윤리로 이동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매체의 변화가 아니라, 창작의 무게중심 자체가 이동하는 현상입니다.


#4. 영감과 조달 사이의 거리 — 규모가 바꾸는 윤리


이 주제는 곧바로 저작권 논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층에는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영감은 소유될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도 언제나 보고 배워왔습니다. 미술사는 모방과 변주의 역사입니다. 학생은 거장을 따라 그리며 눈을 만들고, 그 눈으로 자기만의 어휘를 얻습니다. 그렇다면 AI도 같은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는 "가능성의 규모(scale of affordance)"입니다. 인간의 모방은 시간과 신체의 비용을 요구합니다. 수년의 관찰, 수천 번의 반복, 셀 수 없는 실패가 전제됩니다. 반면 AI의 모방은 규모와 속도에서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개인의 학습이 사회의 학습으로, 수년의 축적이 몇 분의 연산으로 치환됩니다.


이때 살아 있는 작가의 스타일은 더 이상 '영감'의 대상이 아니라, 즉시 조달되는 자원(on-demand resource)이 되기 쉽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윤리는 발생합니다.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도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양적 차이가 임계점을 넘을 때, 그것은 질적 전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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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금지가 아닌 문법 — 샘플링이 남긴 선례


그렇다면 해결책은 금지일까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금지는 늘 회피를 낳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음악의 샘플링 문화에서 유용한 선례를 봅니다.


1991년, 미국 연방법원은 Biz Markie의 무단 샘플링에 대해 저작권 침해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힙합 산업은 '샘플 클리어링(sample clearing)'이라는 관행을 정착시켰고, 원작자에 대한 크레딧과 수익배분의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샘플링은 단순한 절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문법이 되었고, 동시에 권리와 공정함의 규칙을 구축했습니다.


미술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로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스타일 라이선스', '동의 기반 학습(consent-based training)', '출처 표기(attribution)' 같은 관행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문제입니다. 스타일이 포맷이 되는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감상법과 새로운 공정함입니다.


#6. 포맷은 누구나 쓸 수 있다 — 그러나


결국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스타일은 앞으로 점점 더 파일처럼 다뤄질 것입니다. 불러오고, 적용하고, 변환하고, 공유될 것입니다. 이것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러나 예술은 파일이 아닙니다. 예술은 포맷 자체가 아니라, 그 포맷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왜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는지,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총체입니다. 포맷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맷이 말하게 만드는 세계는 아무나 만들지 못합니다.


AI 시대의 예술가가 지켜야 할 고유성은, 손의 독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택의 태도와 맥락의 책임 — 다시 말해, 큐레이션의 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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