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서로에게 인색해졌을까

'토스트 아웃'의 시대

by 류임상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양보'라는 단어가 희귀해졌음을 느낍니다. 지하철의 열린 문 앞에서, 혹은 좁아지는 도로의 합류 지점에서 우리는 전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타인의 사정을 살피기보다 내 몫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 세상. 사람들은 왜 점점 더 타인에게 인색해지는 걸까요?


#1 곳간이 아닌 '심리적 에너지'의 고갈


흔히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그 '곳간'은 통장의 잔고보다 '심리적 에너지'의 잔여량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매일 무한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방어 기제를 세우고, 쏟아지는 정보와 결정 피로 속에서 에너지를 소진합니다. 내 안의 '배터리'가 1% 남짓한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거나 미소를 짓는 일은, 때로 생존을 위협하는 과한 지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2 번아웃보다 무서운, '토스트 아웃(Toast-out)'


완전히 재가 되어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번아웃'이라면,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수분이 다 빠져나가 퍼석퍼석해진 상태를 우리는 '토스트 아웃'이라 부릅니다. 죽을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사는 것 같지도 않은, 기능은 작동하지만 생동감은 잃어버린 애매한 회색 지대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벅차기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열 전도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담아 예전에 곡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 바로 <토스트 아웃(Toast-out)>이라는 곡입니다.


https://youtu.be/BAky6ndIlKA?si=ewsZgo5Q7Npugh3-


"힘들단 말하긴 못하고 아프다 하기엔 건강한,

오늘도 버텨내는 수밖에"

"왠지 모르게 지쳐 숨도 잃어버렸어, 휴식이 필요해"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아프다"고 말할 명분조차 찾지 못한 채, 매일 돌아오는 월요일을 견디며 스스로를 구워냅니다. 겉보기에 건강해 보인다는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외면하고, 그 결과 마음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갑니다.



#3 양보할 수 없는 마음을 위한 변론


결국 누군가가 양보에 인색해 보인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 문제라기보다 그가 처한 '심리적 기근'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선의를 베풀었다가 오히려 이용당했던 상처, 혹은 오늘 하루를 버텨낼 온기조차 남지 않은 절박함이 그를 방어적으로 만든 것이겠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착해져야 한다"는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 뜨거운 토스터기 같은 일상에서 잠시 자신을 꺼내 놓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를 위한 방임'이 먼저일 것입니다. 내가 먼저 촉촉하게 채워져야 비로소 타인을 향한 작은 틈도 생겨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토스트 아웃'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이 노래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그늘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