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스 하이

느린 발걸음이 설계하는 사유의 건축

by 류임상

#1.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고백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분 이상 달리다 보면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이 옵니다.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분비되고, 몸은 갑자기 가벼워지며, 세계가 선명해집니다. 고통 끝에 찾아오는 폭발적 전환.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중독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저는 달리지 않습니다.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아...아닙니다 ^^;;)


천천히 걷습니다. 목적지 없이, 속도 없이, 성과 없이. 그런데 어느 순간, 무언가가 옵니다. 러너스 하이와 비슷하지만 질적으로 전혀 다른 감각. 폭발이 아니라 스며듦. 전환이 아니라 용해. 나와 걸음과 공기의 경계가 천천히 녹아내리는 순간.


저는 이것을 '워커스 하이(Walker's High)'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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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개의 하이, 두 개의 건축


러너스 하이와 워커스 하이는 같은 '하이'라는 단어를 공유하지만, 그 구조는 완전히 다릅니다.


러너스 하이는 클라이맥스의 건축입니다. 고통이 축적되고, 임계점이 오고,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도취가 밀려옵니다. 교향곡의 피날레, 전시장의 마지막 방, 영화의 절정. 긴장과 이완의 드라마투르기가 작동합니다.


워커스 하이는 앰비언트의 건축입니다. 축적도 임계점도 없습니다. 대신 반복이 있습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단조로운 리듬이 의식의 표면을 고르게 닦아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내가 이미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음악이 그렇습니다. 시작도 끝도 절정도 없는 음악. 듣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다가 문득 자신이 음악 안에 있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워커스 하이는 그런 종류의 경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wYtllyt3Q


#3. 니체는 왜 걸었는가


"진정으로 위대한 모든 사상은 걸으면서 나온다."


니체의 이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그는 실제로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을 걸었습니다. 실스마리아의 호숫가를, 니스의 해안을, 토리노의 거리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상당 부분이 걸으면서 구상되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코펜하겐 거리를 끊임없이 걸으며 사유했고, 걷기를 멈추면 우울증이 찾아온다고 고백했습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들이 경험한 것이 워커스 하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었습니다. 느린 걸음이 만들어낸 리듬이 사유의 형식 자체를 바꾼 것입니다. 달리기가 결론을 향해 돌진한다면, 걷기는 생각이 옆길로 새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 옆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만나고, 연결되고, 새로운 의미가 태어납니다.


#4. 경험의 속도를 설계하다


경험 설계자로서 저는 오랫동안 '속도'라는 변수에 주목해 왔습니다.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생각해 봅니다. 빠르게 지나치는 관람객은 작품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이것은 피카소, 저것은 모네. 느리게 머무는 관람객은 작품과 '관계'를 맺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작품인데 속도가 다르면 경험의 차원 자체가 달라집니다.


걷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빠르게 걷는 사람은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합니다. 천천히 걷는 사람은 A와 B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지점들을 경험합니다. 빛의 변화, 바람의 질감, 나뭇잎이 돌아가는 방향,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느린 속도는 세계의 해상도를 높입니다.


워커스 하이는 이 해상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었을 때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계의 디테일이 충분히 선명해지면, 그것들이 하나의 경험으로 통합되는 순간이 옵니다. 파편들이 갑자기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그것이 워커스 하이의 정체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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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큐레이션은 느린 걸음이다


AI 시대, 우리는 모든 것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데 3분, 이미지를 만드는 데 30초, 글을 쓰는 데 1분. 생성의 속도는 거의 무한에 가까워졌습니다. 그 속도 안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선택하는 시간입니다.


큐레이션은 본질적으로 느린 행위입니다. 수백 점의 작품 앞에서 이것과 저것 사이를 오가며, 배치하고, 빼고, 다시 놓고, 물러서서 바라보는 일. 그것은 달리기가 아니라 걷기입니다. 결론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들 사이를 천천히 거니는 것입니다.


워커스 하이가 느린 걸음의 반복에서 오듯, 큐레이션의 창조성도 느린 선택의 반복에서 옵니다. AI가 생성한 수많은 가능성들 사이를 걸으며, 어느 순간 "이것이다"라는 감각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논리적 판단이 아닙니다. 충분히 오래 걸은 사람에게만 오는 직관입니다.


#6. 걷기라는 창작


러너스 하이는 아름답지만, 조건이 가혹합니다.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한계를 넘어야 합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오래.


워커스 하이는 다릅니다. 요구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걸으면 됩니다. 천천히, 아무 데로나, 아무 생각 없이.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의 축적이 어느 순간 '전부'가 됩니다.


우리 시대는 러너스 하이를 숭배합니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워커스 하이일지도 모릅니다.


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걸으면 됩니다. 느리게, 꾸준히, 목적 없이.

그 느린 발걸음 안에서 생각은 자라고, 감각은 열리고, 세계는 다시 선명해집니다.


워커스 하이(Walker's High).


그것은 가장 느린 속도로 도달하는, 가장 깊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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