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은 부끄러움을 잃었습니다

아도르노의 눈으로 본 AI 생성 음악

by 류임상

#1 8초


Suno에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릅니다. 8초 뒤, 노래 한 곡이 완성됩니다.


멜로디가 있고, 가사가 있고,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것을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새롭지 않습니다. 약 80년 전, 한 철학자가 이미 같은 질문의 초안을 작성해 두었습니다.


#2 아도르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1940년대에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Kulturindustrie)'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그가 겨냥한 것은 재즈와 팝 음악, 그리고 할리우드였습니다.


그의 진단은 두 단어로 압축됩니다. 표준화(Standardization)와 사이비 개성화(Pseudo-individualization).


표준화란, 모든 대중음악이 동일한 구조와 공식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절정이 있고, 반복이 있고, 예측 가능한 감정의 굴곡이 있습니다. 청중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듣는 쾌감을 '감동'으로 착각합니다.


사이비 개성화란, 그 표준화된 공식 위에 얹힌 사소한 장식들입니다. 이 가수만의 창법, 저 곡만의 악기 편성, 독특해 보이는 앨범 커버. 이것들은 진짜 개성이 아닙니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에 손으로 쓴 라벨을 붙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도르노에게 대중음악 산업은 하나의 거대한 기만이었습니다. 그것은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동일한 것만을 반복해서 팔았습니다.


#3 사이비 개성화의 자동화


AI 음악 생성 도구들 — Suno, Udio, 그리고 수많은 후발주자들 — 을 아도르노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것은 문화산업의 진화가 아닙니다. 완성입니다.


1940년대의 공장은 적어도 수치심이 있었습니다. 스타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이 노래는 '누군가'가 만든 것처럼 보여야 했습니다. 인간의 얼굴이 필요했고, 그 얼굴을 포장하는 데 돈과 시간이 들었습니다.


AI 생성 음악은 그 수고마저 생략합니다. 이제 프롬프트가 개성이 됩니다.


'upbeat lo-fi Korean indie with melancholic lyrics.' 이것이 당신의 감수성이자, 동시에 오늘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입력하고 있는 문장입니다. 프롬프트의 언어는 개인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모델은 수억 개의 평균 위에 서 있습니다.


아도르노가 말한 '표준화'는 이제 알고리즘 안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완벽합니다. 공장의 굴뚝이 사라지고, 클라우드 서버만 남았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 청중의 상상력을 미리 채워버린다고 했습니다. 들을 것을 미리 결정해버린다는 것입니다. AI 음악은 이 과정을 더 정교하게 수행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입력하지만, '원한다'는 느낌 자체가 이미 학습된 데이터의 산물일 수 있습니다.



#4 그러나 아도르노가 예상하지 못한 것


여기서 멈추면 이 이야기는 익숙한 AI 비관론의 한 편이 됩니다. 그러나 아도르노의 비판에는 놓친 지점이 있습니다.


그는 청중을 수동적 소비자로 가정했습니다. 문화산업이 주는 것을 받아먹는 존재. 저항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실현되리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AI 음악 도구의 현재 사용 방식을 보면, 이 가정이 항상 맞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AI가 생성한 수십 개의 결과물 중에서 단 하나를 고릅니다. 그 선택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자신의 서사와 얼마나 맞는가, 이 소리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에 얼마나 가까운가. 그들은 생성된 것을 편집하고, 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것은 아도르노가 말한 '수동적 소비'와는 다른 무엇입니다. 적어도 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도르노가 본 공장은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AI 도구는 역설적으로 선택의 밀도를 폭발시킵니다. 무엇을 요청할 것인가. 결과물 중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디에 자신의 언어를 더할 것인가. 이 연속된 선택들이 창작의 실질이 될 수 있습니다.


#5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AI 생성 음악 자체는 아도르노의 비판을 피해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표준화되어 있고, 사이비 개성화를 무한히 빠른 속도로 생산합니다.


그러나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태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생성과 선택은 다릅니다. AI가 만들어낸 것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행위와, 그것을 재료로 삼아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아도르노의 비판 그대로입니다. 후자는 적어도 다른 가능성을 가리킵니다.


아도르노가 열망했던 것은 진정한 개성화(authentic individualization)였습니다. 공식을 의식하고, 저항하고, 자신만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그가 쇤베르크와 베르크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서 보았던 가능성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가능성은 AI 시대에도 살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더 이상 생성의 능력에서 오지 않습니다. 선택의 감각에서 옵니다.


무엇을 고르는가. 왜 고르는가. 고른 것들로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사람에게, 아도르노는 아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