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왜 고양이에게 질투하지 못하는가

감정의 투사, 그리고 선택의 저자성에 대하여

by 류임상

#1. 이상한 질투의 노래


aimyon의 2024년 앨범 제목은 '猫にジェラシー', 직역하면 '고양이에게 질투'입니다.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 저는 멈칫했습니다. 고양이에게 질투한다니.


노래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화자는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 사람 곁에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고양이는 아무 자격 없이, 아무 노력 없이 그 사람의 무릎 위에 올라가고, 그 사람의 손길을 받습니다. 화자는 그 고양이가 부럽습니다. 아니, 질투가 납니다.


이 노래가 '달빛 아래 그리움'이나 '너 없는 밤'보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고양이'라는 구체적이고 기이한 대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달이나 바다 같은 범용적인 것에 얹는 대신, 고양이라는 예상 밖의 사물에 투사함으로써, 그 감정은 비로소 '이 사람만의 것'이 됩니다.


https://youtu.be/iqSspWjCA6s?si=63ZPzfWrFQEgyuQt


#2. 감정을 사물에 얹는다는 것


aimyon의 작법을 살펴보면 일관된 패턴이 보입니다. 그녀는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물에 얹습니다.


거품이 빠진 소다. 낡아서 버릴 수 없는 셔츠. 딸기가 떨어진 케이크. 버릴 수 없는 사진. 이런 사물들이 그녀의 노래에 등장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한때는 완전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사물들을 통해 청자는 화자의 감정을 추론하게 됩니다. 아, 이 사람은 지금 이런 마음이구나.


이 작법의 핵심은 '발견'에 있습니다. 감정을 직접 전달받는 것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나는 슬프다'라고 말하면 청자는 정보를 받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빠진 소다처럼'이라고 말하면 청자는 그 이미지 안에서 슬픔을 직접 찾아냅니다. 발견된 감정은 전달된 감정보다 오래 남습니다.



#3. AI가 생성하는 메타포들


그렇다면 AI는 어떤 메타포를 만들어낼까요. 저는 Suno를 비롯한 AI 음악 생성 도구들을 꽤 오래 사용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달. 비. 바다. 별. 새벽. 바람.


이것들은 틀린 메타포가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감정을 투사해온 대상들입니다. 문제는 이것들이 너무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달빛 아래 그리움'은 누구의 그리움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움의 평균입니다. 모든 그리움을 합쳐서 나눈 값입니다.


AI가 이런 메타포를 반복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통계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먼저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AI는 수많은 가사 데이터를 학습했고, 그 데이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조합을 출력합니다. 달과 그리움, 비와 눈물, 바다와 이별. 이런 조합은 '틀리지 않기' 때문에 선택됩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음'과 '좋음'은 다릅니다. 고양이에게 질투한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렬합니다.


#4. 선택의 이력이 없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aimyon이 '고양이'를 선택한 것과 AI가 '달'을 생성한 것 사이의 차이입니다.


aimyon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고양이'를 골랐습니다. 그녀 앞에는 달도 있었고, 바다도 있었고, 비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들을 거부하고 고양이를 선택했습니다. 그 선택에는 이력이 있습니다. 왜 고양이인가에 대한 이유가 있고, 다른 것들을 거부한 판단이 있습니다.


AI에게는 이 이력이 없습니다. AI는 생성할 뿐, 선택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AI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AI에게 '달'이 출력된 것은 그것이 통계적으로 가장 높은 확률을 가졌기 때문이지, 다른 것들을 검토하고 거부한 결과가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거부의 저자성'이라고 부릅니다. 창작에서 진정한 저자성은 무엇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거부했느냐에서 드러납니다. aimyon의 고양이는 달과 바다와 비를 거부한 흔적입니다. 그 거부의 이력이 고양이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5. 큐레이터의 개입 지점


그렇다면 AI 시대의 창작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AI가 '달빛 아래 그리움'을 제안하면, 그것을 그대로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고양이에게 질투'로 바꾸는 것은 인간의 몫입니다. AI는 평균을 제안하고, 인간은 예외를 선택합니다. 이 선택의 순간에 저자성이 발생합니다.


AI에게 '짝사랑 노래를 써줘'라고 하면 카페가 나오거나 밤하늘이 나오거나 비 오는 거리가 나옵니다. 병원은 나오지 않습니다. 병원은 통계적으로 짝사랑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병원은 강렬합니다. 누군가의 구체적인 삶에서 나온 메타포이기 때문입니다. 즉, 병원에 가고 싶을 만큼 아픈데 병원에선 안받아준다는 마음. 아건 통계의 감성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편집자적 저자성'이라고 부릅니다. AI가 생성한 것들 중에서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릴지,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할지. 이 판단의 연속이 곧 창작입니다.


#6. 투사 대상을 고르는 자가 저자다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감정을 어디에 얹을 것인가.


AI는 달에 얹습니다. 바다에 얹습니다. 비에 얹습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가장 안전하고 가장 평균적인 대상들입니다. 그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고양이에게 질투하는 것. 병원에 가는 것. 거품 빠진 소다를 바라보는 것. 이런 메타포들은 통계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것입니다. 그 '기이함'이 곧 개인의 서명입니다.


AI 시대의 창작자는 생성자가 아닙니다. 선택자입니다. AI가 제안하는 평균들 사이에서 예외를 골라내는 사람. 달 대신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람. 카페 대신 병원을 선택하는 사람. 그 선택의 이력이 곧 저자성입니다.


고양이에게 질투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