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무덤. 버려진 기억.

김태은, 언덕 위에 발화점, Flash Point - Tomb, 2014

by 류임상

1. '석순(石筍)'이란 깊은 동굴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낙화한 석회 성분이 굳어 마치 죽순과 유사한 형상을 이루었을 때 붙이는 이름이다. 그리고 이 석순은 자라서(?) 하나의 기둥, '석주'를 이루기도 한다.


2. 김태은 작가의 '언덕 위에 발화점, Flash Point - Tomb'은 기괴하다. 장난스럽고 천진하지만 서늘한 시대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 열수축 튜브를 이용하여 빠른 시간에 응고시킨 각각의 '석주'들은 오랜 시간 석회가 쌓여서 기둥을 이루었듯,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형태를 알 수 없는 기둥 안의 것들 -아동용 장난감들로 추정되는- 은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희미한 형태를 지닌다.



3.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것', 혹은 '보면 알 것 같은데 이름은 기억나질 않는 그 무엇'은 아마도 우리의 기억에서 취사선택되어 버려진 '어떤 것' 이리라. 거기에 석회 기둥과도 같은 시간이 덧 입혀져서 이젠 희미하게,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것이 되어 버린 그런.


4. 작가는 '무엇인지 모르겠는 형상'을 우리에게 건네며 역설적으로 그것이 우리 모두의 기억이 되도록 이끈다. 관람자는 이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을 독해하려 애쓰며 스스로의 기억을 덧입힌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 속에서 이 순백의 기둥에 본인의 기억을 투영한다. 우리에게 투영된 형상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다 버린 장난감이 될 수 도, 고통스러운 기억에 몸부림치던 찌푸린 내 얼굴 일 수 도 있다. 동시에 그것은, 기억에서 필요해 의해 버려진 시간이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외침 일 수 도 있겠다.


5. 영국 BBC의 드라마 '셜록'을 보면, 홈즈는 사람의 기억 용량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억은 금방 지워 버린다고 말한다. 그게 그렇게 수월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머릿 속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망각'이라는 기능으로 뇌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렇게 기억들은 알게 모르게 내 삶 속에서 취사선택되어 버려지고 있을 것이다.



6. 오늘 난, 몇 개의 기억을 버렸을까.


7. 예술의 위대함은, 종종 이렇게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버린' 기억을 불쑥 의식으로 초대해 말을 걸어준다는 것이다.


8. 기획자가 할 일은 그저 그 둘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게 좋은 '장치'를 해주는 것 아닐까. 한다.

좋은 사람을 좋은 분위기에서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 - 참 행복해지는 것처럼.




* 사실 '언덕 위에 발화점, Flash Point - Tomb, 2014'은 2011년 문경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와의 협의하에 현재 전시(서울미술관 2층 로비)는 조금 의미를 넓혀서 소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