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경험'하는 것.

'띠지'에 관한.

by 류임상

1. 난 독서광이라기 보단 '도서'광에 가까운 것 같다. 맘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몇 권 되더라도 일단 사고 본다. '언젠간 읽겠지'라는 맘으로. 매일 맘으론 '언제 다 읽나...' 하면서도.


2. 그러다 보니 계속 쌓이는 책의 수납과 정리가 항상 문제였는데, 얼마 전 새 집으로 이사 오면서 거실을 통째로 '서재화'하며 이 점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물론 벌써 추가로 책장을 주문해야 할 지경이지만)


3. 책을 모으다(!) 보면, 항상 '계륵'같은 존재가 바로 '띠지'이다. 다 보고 난 후에야 책에 다시 끼워서 책장에 잘 꽂아두면 되지만 책을 '읽을' 땐 문제가 발생한다.

4. 성격이 이상한지, 책을 읽을 땐 뭔가 환경이 정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항상 이 '깔끔 떰'이 문제다- 띠지를 책상 위에다 아무렇지 않게 두기는 싫고, 그렇다고 책에 끼운 채 읽기에는 잡고 있기가 불편해서 영 거슬린다. 잘 접어 책갈피 대용으로 쓰는 정도가 최선의 타협점이랄까.


5. 책 디자인을 하는 사람 입장해서도 띠지는 늘 문젯거리 일 수 도 있겠다. 디자인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고로 '띠지'라 함은 구매자의 시선을 붙들기 위한 일종의 '광고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조금 낯 뜨거운 문구나 이미지들이 실리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가 극찬한!' 이라든지, '~지 베스트셀러!'라든지 하는 전형적인 광고 문구들이 실리니 말이다. 그러므로 얻게 되는 '촌스러움'은 덤이고.


6. 그래도 '띠지'는 본래 디자이너의 안목에 의해 본 책과 조화를 최대한 어우러지게 만들었을 거니(아닌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들었지만) 포장지 뜯어 내듯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띠지를 관리하면서 책을 읽기'는 불편하지만, 그 역시도 책의 일부일 지니. '글'이 아닌 '책'은 글쓴이의 내용과 편집자의 안목, 그리고 북 디자이너의 감각이 어우러진 결정체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말이다.


7. 띠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졌을게다.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그 책의 내용이 전달되지 않으니 최대한 자극적으로, 그리고 현란하게. 그러다 보니 띠지에 속아 책을 사는 사람도 있고, 띠지와는 다른 내용에 실망하는 사람도 더러 생기게 되었다.


8. 내용-편집-디자인이 잘 조화를 이룬 책은 소장가치가 높다. 편집과 디자인 역시 '내용'의 일부로 기능하기에 위의 세 가지가 잘 균형을 가져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존 테니얼의 삽화를 빼고 상상하기 어려우며, 하루키의 수필은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가 있을 때 더 맛이 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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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쁜 띠지가 조화롭게 책을 감싸 안고 있는 걸 발견하면, 그것만으로도 맘이 풍요로워진다. 현란하지 않고 책의 핵심을 콕 집어 북 커버를 보완하는 멋진 띠지는 그걸 궁리해 내었을 디자이너의 노고와 편집자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보여 흡족하다. 물론 작가의 결정도 중요하겠지.


10. 그러함으로, 나는 오늘도 띠지를 버리지 않고 책에 책갈피로, 혹은 그대로 끼워 둔 채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라는 건 단순히 문자를 판독하는 행위가 아닌, <그들>이 고민한 흔적을 책을 통해 '경험'하는 것 일 테니 말이다.




* 생각해보면, 수많은 sns 서비스의 '머리말' 같은 것들도 결국 나에 대한 '띠지' 아닐까. 카카오톡의 상태 표시 문구나(나는 여기에 무언가를 써본 적은 없지만) 페이스북의 상단 이미지(혹은 프로필 사진), 인스타그램의 작은 소개글 같은. 그런.


** '나'를 대표하는 수많은 문구나 이미지-그러니깐 '띠지'-들은 인간관계에 있어 좋은 역할을 해준다. 나를 어느 정도의 규격 안에서 '설명' 할 수 있기도 하고,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조금 뻔뻔(?)하게 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 하지만 간혹, 타인의 '띠지' 때문에 그 사람에게 선입견을 가진다던지,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책에 끼운 채 읽기에는 잡고 있기가 불편해서 영 거슬리'는 책의 띠지처럼 멀리서 보기에는 좋으나 막상 부딪히면 자꾸 떠오르게 되는 여러 생각들이 있다는 거다. 역시 '띠지'는 띠지 만큼의 역할을 할 뿐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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