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잣대를 넘어서 존재한다
오늘 하루 만에 '폭싹 속았수다'를 정주행 하면서 문득 글을 쓰고 싶어졌다. 내가 살았던 시절은 아니지만 지금과는 다른 순수하고 낭만 있는 시대가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기준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누가 언제 정해놓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면 데이트 비용 문제. 흔히 말하는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부담해야 한다’라는 인식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그럼 여기서 궁금해진다. 더 많이 번다는 건 얼마를 더 번다는 걸 기준으로 하는 걸까?
월급 5만 원 차이면? 아니면 50? 100? 만약 기준이 100만 원이라면, 90만 원 차이일 땐 더치페이가 맞는 걸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미성년자와의 연애 문제. 고등학교 3학년을 12월 31일에 만나는 건 안 되지만, 하루 뒤인 1월 1일 20살에 만나면 괜찮은 건가? 그럼 성인을 만나는 거니깐.
혹은 고3과 고1 커플이 있다면, 시간이 흘러 한쪽이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한쪽은 미성년자를 만나는 파렴치한이 되는 걸까? 기준을 어떻게 두고 잘못된 관계로 치부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너무 관심이 많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는 그저 비판할 거리를 찾으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사냥하듯이 상대를 공격한다. 오늘의 먹이가 누구든 상관없다.
하나라도 걸리면 그게 바로 오늘의 목표가 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치 사람들이 집단으로 분노를 표출할 대상만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대상이 정해지면 일제히 비난을 쏟아낸다. 정의를 위해서라고 포장하겠지만, 사실은 단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위선일지도 모른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연상연하 학생 커플이 등장한다. 그들은 18살에 아이를 낳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며 서로에게서 행복과 의미를 찾아낸다.
시대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넷플릭스 1위를 달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쏙 빼놓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현재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도덕의 잣대를 그들에게도 적용하며 보고 있을까?
만약 그 기준을 들이대고 본다면 그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 몰입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기준을 강요하기보다 단순하게, 낭만을 찾을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그저 멜로드라마를 보듯 현실에서도 단순하게 받아들이며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다 보면, 결국 내가 나를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타인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려다 보니 스스로를 상처 내고, 결국에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