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름을 방치하는 환자

일상

by Axiom


59세 남자 환자가 당뇨족으로 내원했다.


우측 발등에 약 3cm 직경의 새까만 피부 괴사 조직이 보이고 그 주변이 국소적으로 붓고 발적이 있었다.


괴사 조직의 경계에선 노랗게 고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 달 전에 상처가 났었는데 그 뒤로 심해지더니 이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곤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다짜고짜 약을 달라고 한다.



"약만 주세요. 저 바쁜 사람입니다. 30분이나 기다렸어요."



약만 먹으면 안 되고,
적절한 외과적 처치(절개하고 고름을 제거)가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드렸더니 환자가 화를 냈다.



"이까짓 것 가지고 무슨 칼을 댄다는 거야!"



알고 보니 이미 병원을 세 군데나 방문했었고, 거기서도 다들 수술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걸 방치하면 감염이 위아래로 퍼져서 최악의 경우엔 절단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건 그때 문제고,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약만 처방해 주세요."



몇 번 더 설득을 했지만 실패했다.


이럴 땐 현 상황에 대한 차팅을 자세히 한 뒤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해 줄 수밖에 없다.



"방치하면 더 큰일 납니다."



나가는 환자의 등 뒤에 마지막 양심을 얹어 보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이 병원은 진료 대기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왜 저러나 싶다가도,
나도 식당 웨이팅을 싫어하기에 그전 진료에서 시간 관리를 못한 게 한편으론 미안했다.
30분이나 기다리는 건 누구에게나 반갑지 않은 일일 것이다.


30분.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다.


30분이면
KTX를 타고 서울에서 천안까지 갈 수 있으며,
비행기를 타면 광주에서 제주도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시트콤을 한 편 정도 볼 수 있는 시간이며,
[냉장고를 부탁해]의 대결 한 경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롤 한 경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며
복싱 10라운드 정도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강남 생활권의 기준 시간이기도 하다.
그 해당 여부에 따라 아파트 값이 수억 원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대한민국에겐 30분이 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약 30분에 한 명씩, 대한민국 국민이 자살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약 2~3명이 사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2명 중 1명은 20~40대다.
대한민국 인구 감소 폭의 약 12%가 자살에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 감소와 높은 자살률의 원인엔 교집합이 많다고 한다.


모두가 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해결하려고 움직이고 있긴 하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효과가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것들로 호전이 될까?
혹시 약만 먹고 있는 게 아닐까?


환자가 거부하니 어쩔 수 없다며,

진상 환자를 어떻게 설득하냐며,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며,

환자를 떠나보내고

법적 방어를 위한 차팅 작성에 집중하고 있는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