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지지무지(不知之無知)

공상일기

by Axiom

칼을 잡는 외과의라면 누구나 수술은 완벽히 하고 싶어 한다.

예를 들어, 골절 환자를 수술할 때엔 뼈의 모양을 다치기 전과 똑같도록 완벽하게 맞춰주고 싶어 한다.

사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새내기 정형외과 전문의들 일수록 그러한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그러다 오히려 뼈가 붙지 않게 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골절의 종류에 따라 어떤 경우엔 뼈 모양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지만,

어떤 경우엔 뼈 모양을 정확하게 맞추려 하다 뼈를 먹여 살리는 골막(뼈를 덮고 있는 두꺼운 껍질)에 손상을 줘서 오히려 뼈가 붙지 않게 된다.

골절 부위를 골막이 가리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모양을 만드려면 골막을 일부 제거해야 시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모양을 만드는 것보다,

골절 종류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해놔야 한다.

골막을 보존하면서도 모양을 완벽하게 하면 그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힘든 경우엔 모양이 다소 울퉁불퉁하더라도 골막을 보존하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결과를 얻으려고하다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단 골절 수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뭐가 됐든, 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주관적인 경험상 그런 경우엔 원인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2002년 미국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기자회견에서 정보와 인지의 3단계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1. Unknown Unknowns (미지의 미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

(예: 기존 모델이나 시나리오에 아예 존재하지 않아 예측 범위 밖에 있는 치명적인 변수.)


2. Known Unknowns (기지의 미지):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

(예: 다음 분기의 정확한 경제 성장률, 특정 수술 중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의 발현 여부. 위험 요소로 식별되어 대비할 수 있음.)

3. Known Knowns (기지의 기지):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예: 검증된 과학적 사실, 현재 발표된 기준금리, 이미 확보된 통계 데이터.



Unknown Unknowns를 한자어로 바꾸면 불지지무지(不知之無知)가 된다.


일, 연인, 관계, 정치, 경제 그 무엇이 되었든.

잘하려고 발버둥 치는데,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고 그게 무엇인지 모를 때.

잠시 멈춰 서서 불지지무지(不知之無知)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게 되묻는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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