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보다 의심해야할 것은 여론이다.

공상일기

by Axiom
"군중이 있는 곳에 진리가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견해가 있다. 군중이 있는 곳에는 비진리가 있다." — 쇠렌 키르케고르, 「군중은 비진리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치인의 거짓말을 경계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더 위험한 것은, 우리가 거의 의심하지 않는 대상, 바로 여론일 수 있다.

정치인은 적어도 이름과 얼굴이 있고, 발언에 책임을 진다(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러나 여론은 익명이다. 책임의 소재가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사상가들은 하나같이 대중의 의견을 "진리가 아닌 것"이라 불렀다.

이 글은 200년에 걸친 지적 전통 속에서, 여론이 왜 종종 "최악의 의견"이 되는지를 추적한다.






1. 여론은 어떻게 영혼을 지배하는가: 토크빌과 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으로 "다수의 폭정(tyranny of the majority)"을 지목했다. 그가 본 미국은 전제군주가 아니라 다수의 의견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토크빌의 관찰은 냉정했다.

"미국만큼 정신의 독립성과 진정한 토론의 자유가 적은 나라를 나는 알지 못한다.""미국에서 다수는 여론의 자유 주위에 무시무시한 장벽을 세운다. 그 장벽 안에서 저자는 원하는 것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자에게는 화가 미칠 것이다."
— 토크빌, Democracy in America (1835), Vol. 1, Ch. 15 —


토크빌이 구조적 위험을 진단했다면, 존 스튜어트 밀은 그 위험이 인간의 내면까지 침투하는 양상을 추적했다. 1859년 출간된 《자유론(On Liberty)》 제1장에서 밀은 이렇게 선언한다:

"사회는 자신의 명령을 스스로 집행할 수 있으며, 실제로 집행한다. 만약 사회가 간섭해서는 안 될 일에 잘못된 명령을 내린다면, 그것은 많은 종류의 정치적 억압보다 더 무시무시한 사회적 폭정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통상적으로 극단적인 형벌에 의해 유지되지는 않지만, 탈출 수단이 더 적고, 삶의 세부에까지 훨씬 더 깊이 침투하며, 영혼 그 자체를 노예로 만든다."
— 밀, On Liberty (1859), Chapter 1 —


핵심은 이것이다. 정치적 억압에는 법정이 있고 항소가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라는 억압에는 탈출구가 없다. 감옥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에서 단 한 사람만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그 한 사람이 권력을 가졌다고 가정할 때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만큼이나 정당화될 수 없다."
— 밀, On Liberty (1859), Chapter 2 —




2. 군중은 비진리다: 키르케고르의 선언


토크빌과 밀이 정치적·사회적 분석가였다면, 쇠렌 키르케고르는 실존적 차원에서 군중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키르케고르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고 강렬하다: "군중은비진리다(The crowd is untruth)."

이 명제는 그의 에세이 「군중은 비진리다」에서 전개되며, 이 글은 《나의 저작 활동에 대한 관점(The Point of View for My Work as an Author)》에 포함되어 있다. 관련 주제는 《두 시대(Two Ages)》(1846)에서도 발전된다.


"군중은 비진리다. 왜냐하면 군중은 회개하지 않음과 무책임을 만들어내거나, 최소한 개인의 책임을 분수(分數)로 축소시킴으로써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 키르케고르, The crowd is untruth —


개인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 그러나 군중 속에서 개인은 책임이 n분의 1로 희석되고,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언론이 만들어낸 '공론(the public)'이라는 추상적 존재 뒤에 숨어, 누구든 용기 없이도 무엇이든 말할 수 있게 된다. 키르케고르가 이를 "거대한 무(a monstrous nothing)"라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3. 의회주의라는 허상: 니체의 "떼 본능" 비판


프리드리히 니체는 대중의 의견을 "떼 본능(Herdentrieb)"의 산물로 보았다. 그에게 여론이란 독립적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다수에 속하고 싶은 동물적 충동의 표현이었다.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1882) 제3권에서 니체는 의회주의 자체를 조롱한다.


"의회주의. 즉, 다섯 가지 기본 정치 견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공적 허가는 독립적이고 개인적으로 보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아첨하고 호감을 산다. 마치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위해 싸운 것처럼. 그러나 궁극적으로, 떼가 하나의 의견을 명령받든 다섯 개의 의견을 허용받든, 그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다섯 가지 공론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자는 언제나 떼 전체를 적으로 맞게 될 것이다."
— 니체, 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2), Book III —


이 구절이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환상을 정면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의견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자유인가? 아니면 다섯 가지 우리 안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에 불과한가? 니체에게 진정한 위험은 독재자가 아니라, 개인이 떼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압력이었다.




4. 평범함의 반란: 오르테가 이 가세트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1929년 《대중의 반란(La rebelión de las masas)》에서 "대중인(mass ma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신문 El Sol에 연재 후, 1930년 단행본 출간.)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오르테가가 말하는 "대중"은 사회적 계급이 아니다. 그것은 심리적 유형이다. 자기 자신에게 어떤 탁월함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평범함을 당당하게 세상에 강요하는 인간. 백만장자도 대중인일 수 있고, 노동자도 소수의 탁월한 개인일 수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평범한 정신이 자신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범함의 권리를 선언하고 그것을 어디에서든 강요할 담대함을 가진다는 것이다."
"대중은 다른 모든 것 — 탁월한 것, 개성적인 것, 자격 있는 것, 선별된 것 — 을 짓밟는다."
— 오르테가 이 가세트, La rebelión de las masas (1929), 제8장 —


오르테가의 통찰이 오늘날 소셜 미디어 시대에 특히 날카로운 이유가 있다. SNS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 전문가의 의견이 무자격자의 "느낌"에 의해 묵살되고, 복잡한 문제가 280자의 단언으로 환원되는 현상 — 오르테가가 1929년에 예견한 것이 정확히 실현되고 있다.




5. 우리는 실재가 아닌 허상 속에 산다: 리프만의 《여론》


월터 리프만의 《여론(Public Opinion)》(1922)은 20세기 미디어 연구와 정치심리학의 초석이 된 저작이다.

리프만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정부 선전 활동(CPI,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전제 <시민은 충분히 정보를 갖추고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가 근본적으로 허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리프만의 핵심 개념들


- 의사환경(pseudo-environment)

: 사람들은 실재 세계가 아니라, 미디어와 경험에 의해 구성된 "머릿속 그림"에 반응한다. 실재 환경은 너무 크고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직접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고정관념(stereotype)

: 리프만은 이 용어를 인쇄 용어에서 빌려와 사회심리학적 맥락으로 확장·대중화한 최초의 사상가다. 사람들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된 정신적 틀로 환원하여 처리한다. 이 과정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인식을 체계적으로 왜곡한다.


- 동의의 제조(manufacture of consent)

: 대중 미디어는 의사환경을 구성함으로써 여론을 의도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이 개념은 훗날 촘스키와 허먼의 《동의의 제조(Manufacturing Consent)》(1988)로 계승된다.


"실재 환경은 직접 파악하기에 너무 크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빨리 사라진다."
— 리프만, Public Opinion (1922) — 출처: Project Gutenberg, Wikipedia


리프만이 1922년에 신문과 라디오를 걱정했다면, 2020년대의 알고리즘 기반 맞춤형 뉴스피드가 만들어내는 의사환경은 어떠한가? 오늘날 개인은 자신만의 필터 버블 안에서 자신의 편향을 끊임없이 확인받으며, 이웃과 같은 "머릿속 그림"조차 공유하지 않는다.




6. 군중의 심리학: 귀스타브 르 봉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 대중 심리 연구(Psychologie des foules)》(1895)는 군중 심리학의 고전이다.

르 봉의 주장은 극단적이지만, 핵심 관찰에는 부인하기 어려운 진실이 있다:


"문명은 지금까지 소수의 지적 귀족에 의해서만 창조되고 이끌려 왔으며, 군중에 의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군중은 파괴에서만 강력하다."
— 르 봉, Psychologie des foules (1895), 서문 —


르 봉에 따르면, 개인은 군중에 합류하는 순간 세 가지 변화를 겪는다.


첫째, 익명성이 책임감을 소멸시킨다.

둘째, 감정과 행동이 전염된다.

셋째,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 암시에 극도로 취약해진다. 교양 있는 개인도 군중 속에서는 "야만인"이 된다.


이 저작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Group Psychology and the Analysis of the Ego)》(1921)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군중 심리학 연구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군중은 항상 비합리적인가?


항상 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현대 군중 심리학 연구는 르 봉의 주장이 과장되었음을 보여준다.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대피 과정에서 군중은 패닉에 빠지지 않았고, 상당히 질서정연하게 행동했다. 군중이 항상 비이성적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반론을 인정하더라도, 여론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 자체는 약화되지 않는다. 군중이 항상 틀리는 것은 아닐지라도, 군중 속에서 개인의 판단력이 체계적으로 약화되는 메커니즘은 실재한다. 문제는 군중이 항상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군중의 의견이 자동적으로 옳다는 전제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여론의 위험은 그것이 틀렸을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여론의 위험은 그것이 반박 불가능해질 때 발생한다.


토크빌은 다수의 의견이 법보다 강력해지는 순간을 경고했다.

밀은 사회적 압력이 영혼까지 노예로 만든다고 보았다.

키르케고르는 군중 속에서 개인의 책임이 소멸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니체는 떼 본능이 개인의 사유를 질식시키는 메커니즘을 폭로했다.

오르테가는 평범함이 권리로 변신하여 탁월함을 짓밟는 현상을 진단했다.

리프만은 우리가 현실이 아닌 허상에 기반하여 의견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사상가들의 공통분모는 민주주의에 대한 적의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민주주의를 구하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무비판적 다수의 지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 "국민 여론이 이렇다"는 뉴스를 볼 때, 한 번쯤 자문해 볼 일이다.


그 의견은 정말 수백만 명이 독립적으로 사유한 결과인가?

아니면, 리프만이 말한 "의사환경"이 만들어낸, 키르케고르가 말한 "거대한 무(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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