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이 Jun 13. 2022

양육자로부터의 독립

가족과 페미니즘

가족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지만, 양육자가 나이 듦에 따라 생기는 걱정과 분노의 이중적인 감정이 최근 나에게 가장 큰 이슈다. 부모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목격해야 하는 모습들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귀엽기도 하지만, 때론 방문을 꽁꽁 닫고 이불을 뒤집어써야 풀리는 화의 형태로 찾아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늘 큰 존재였다. 뭐든지 고칠 줄 알고, 어떤 문제든 몸으로 부딪혀보는 해결사. 심지어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그런 아버지가 2020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하마터면 수술을 받지 못할 뻔했지만, 행운이 따라 병원을 옮겨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한 달간의 입원 치료 기간 동안 어머니, 형, 나는 3교대로 병간호를 했다. 그 덕분에 지금 아버지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수술 이후에 어딘가 달라졌다. 야근하고 온 형과 인사를 나누고 잠깐 잠을 자고 일어나더니 형을 보며 언제 들어왔냐고 물었다. 이전에는 본인이 알아서 잘 찾을 만한 물건들도 이제는 못 찾고 어머니에게 찾아달라 물어본다. 이런 일들이 잦아졌고, 나는 속으로 부모가 나이 듦에 따라 자식들이 하는 걱정이 이런 거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걱정이 아니라 독립을 생각해야 하는 일들도 생겼다. 아버지가 사용하는 언어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머니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아버지와 함께 보건소로 pcr검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구청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청 주차장이 작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아버지는 “구청 개 XX놈의 XX들”이라며 느닷없이 욕을 내뱉었다.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중년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나에게는 너무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그 사건 이후에도 아버지는 TV를 보며 자주 욕을 한다. 특히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정치인이 등장하면 욕의 수위가 심해진다. 그걸 방문 너머로 듣고 있는 나는 늘 불편하고 불쾌하다.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수술 이후에 아직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수술이 2020년 9월인데 지금까지 회복이 되지 않았다니. 어머니는 아버지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아직 갖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회복이 아니라 현재를 기본값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더 이상 나아지지는 않을 거고 점점 나빠질 거라고. 순간 불효자가 된 기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희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엔, 나는 아버지의 언어폭력을 하루하루 견뎌야 하는 입장이니까. 이미 이 집은 나에게 불쾌하고 불안한 곳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독립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부모와 따로 살아야 하는 시기가 왔구나 싶다. 내가 원하는 삶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그 평화를 위해서라면 경제적 불안과 일상의 불편을 견뎌낼 수 있겠구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