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장부터 파리 올림픽까지, 남성문화 뛰어넘기

by 태이

전 세계인의 축제, 제33회 올림픽이 파리에서 시작됐다. 4년 동안 구슬땀 흘린 대한민국 선수단이 꿈을 이루는 약 한 달의 시간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벌써 여러 개의 메달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친환경, 다양성을 비롯해 성평등 이슈로 주목받았다. 특히 올림픽 최초로 여성과 남성 선수 비율을 50%로 동일하게 맞췄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일상에서 여전히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경쟁을 통해 누군가보다 나의 신체적 우월함을 증명해 내야 하는 엔터테인먼트 영역.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위계질서의 위에, 누군가는 아래에 위치하는 수직적 문화를 경험한다.



남성적인 스포츠 문화


대학 시절 여성 학우의 비율이 매우 높은 학과에 진학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모든 남성 신입생은 당시 학과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축구 동아리의 의무 가입 대상이었다. 나 역시도 예외 없이 입학 한 달 만에 유니폼과 축구화를 구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돈이 정말 아깝다)


첫 연습 경기에 참여했던 날, 고단한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왜소하고 축구를 잘하지 못했던 탓에 첫날 학과 선배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야 했다. 축구 실력을 지적하는 것부터 심하게는 외모 비하까지. 더 나아가 후배들이 음료를 사 오고 공 가방을 들 때, 선배들은 담배를 피우며 시시덕거렸다. 그것이 남성 선배들이 구성해 놓은 동아리 문화였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며 어딘가 부족한 후배는 기꺼이 욕받이가 되는 작은사회. 그 세상이 싫어 이후 동아리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이처럼 남성 간의 서열과 위계를 바탕으로 그룹을 지어 연대를 공고히 하는 모습은 남성문화가 스포츠의 영역으로 옮겨붙은 대표적 사례다. 예로부터 신체와 근육을 사용하는 행위는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며 땀을 흘리고 몸을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야만 남성 간에 우정이 쌓인다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러나 필자의 대학 시절의 부정적이었던 축구 동아리 추억처럼, 스포츠에서의 남성 문화는 경험하는 이에 따라 차별과 소외의 경험으로 다가온다. 운동 실력이 좋거나 서열에 복종하거나 둘 중 하나라도 안되면 기꺼이 광대처럼 누군가를 웃길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은 남성들은 그룹에서 자연스레 소외되며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쉽게 취급받는다. 스포츠를 매개해 우월과 열등의 남성문화가 머릿속에 뿌리내리는 셈이다.



스포츠는 남성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는 대단히 남성 중심적이며 철저히 젠더화 되어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의 여성 선수를 보도하는 최근의 언론 기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사격 선수들의 메달 소식을 보도하며 ‘엄마는 위대하다', ‘엄마 총잡이', ‘출산보다 무서운 건 없어요' 등의 문구를 기사 제목에 넣는다. 선수들이 땀 흘린 노력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출산이라는 키워드로 여성선수들을 설명한다. 반대로 올림픽과 아빠를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하면 선수들의 아버지 인터뷰가 나온다.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이벤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과 스포츠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아가 2021년 도쿄올림픽을 보도했던 언론 매체 500여 개를 아사히 신문에서 분석한 결과, 남성 선수에 대한 수식어와 여성 선수에 대한 수식어가 큰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남성 선수에게는 호쾌, 완벽, 강렬과 같은 언어가, 여성 선수에게는 약하다, 무겁다, 갖고 싶다와 같은 언어가 주로 사용됐다. 더 나아가 여성 선수를 설명할 때는 외모와 연관 짓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여성들은 남성만이 전유하던 스포츠라는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하는 풋살 리그가 있다. 여성민우회는 2023년 ‘제2회 전국민우풋살리그'를 대전에서 개최했다. 전국의 6개 팀이 출전하고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이 함께 뛰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올해는 한국기자협회에서도 여성 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풋살대회를 열었다. 12개 팀이었던 참가율이 올해는 29개로 열기가 무척 뜨거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023년 한겨레에서는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생활 체육의 장비와 시설을 지적하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풋살화를 사고 싶지만, 여성용 풋살화를 국내에 구할 수 없어 아동용 풋살화를 신어야 했다는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더 나아가 화장실, 탈의실, 샤워실 등과 같은 시설도 남성용으로만 조성된 곳이 많다는 인터뷰도 있었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


앞서 소개했듯 파리 올림픽은 성평등과 포용성을 주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스포츠계에서 평등의 바람이 불고 있다.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은 세계적으로 인구, 사회, 산업, 정치 그리고 문화의 새로운 혁신 기준으로 부상한 지 오래다. 국제적인 트렌드에 따라 한국의 스포츠 문화도 남성 중심에서 모두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특별히 언론의 보도 양태도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여성 운동선수들을 ‘엄마’, ‘출산' 등의 정체성으로 호명하지 않아야 한다. 친절함과 따뜻함의 이미지보다 그들이 선수로서 이룩한 성취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올림픽과 같은 이벤트를 보도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일상을 사는 시민들의 인식도 함께 바뀔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변화의 시작을 알린 여성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세계적 변화와 시간표를 공유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고단한 현실을 뚫고, 여성들은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기 몸을 평가하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남성이 세운 스포츠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 그들이 있기에 변화의 시계는 더욱 앞당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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