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이 전부라는 착각

by 태이

얼마전 활동가들이 모여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잘 진행되었고 여러 질문과 답변도 오갔으며 행사는 박수로 마무리 됐다. 강연이 끝난 후 활동가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서 강연자에 대한 평가가 오고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듣기 거북해서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강연자의 정체성을 기반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강연자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중년 남성이다. 그러니 그가 했던 이야기 중 일부는 자연스레 우리 사회 자본을 가지고 여성의 돌봄을 받는 남성의 안온한 이야기로 비쳐졌나 보다. 많은 활동가들은 그런 그의 세대적, 경제적 정체성을 지적하며 그의 발언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 얼마나 무지한지 등을 격한 언어로 표현했다.


내가 그들의 평가 아닌 평가를 듣기에 거북했던 이유는, 강연자의 정체성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가혹한 비판이였기 때문이다. '개짜증난다' 또는 '팼다'라는 표현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적절하다. '팼다'라는 표현은 그 자체만으로 대단히 폭력적이다. '개짜증난다'라는 표현은 여러 구체적 감정을 하나로 퉁치기에 그 모호성 때문에 쓰기 참 편리한 동사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 표현 앞에 아무리 많은 논리적 근거를 두더라도 편리한 표현을 쓰는 순간 설득력을 잃는다.


무엇보다도 나와 활동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시민사회 활동가는 우리 주변의 세상을 문제의식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는데 특화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직업이고 역할이고 사명이니까.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누구를 만나더라도 긍정적인 면보다 문제적인 면을 먼저 그리고 아주 강렬하게 발견하게 된다. 소위 '활동가적 마인드'는 일할 때는 도움이 되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듣는 강연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이런 사실을 한 활동가는 이미 알고 있던 듯 싶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강연자의 투쟁 시절 이야기를 들었으면 그 뒤의 이야기가 다르게 들렸을 것 같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은 넓고 내가 일하는 분야는 좁다. 어느 직업을 가지든 '이거면 다 돼' 같은 단선적인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록 그의 여러가지 흠이 보이더라도, 그로부터 내가 배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내는 것이 나에게도 좋고 그에게도 좋다.


덧붙이자면 나는 강연이 썩 마음에 들었다. 강연자의 조심스러운 태도와 차분한 이야기,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고집이 좋았다. 그게 누군가에겐 건방지고 잘난체하는 것으로 들렸나보다. 강연에 참석한 그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들으셨어요?'라고 묻기보단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말들만 쏟아 낸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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