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끄덕이고, 박수 쳐라

by 태이

약 한 달 반의 시간을 '김팀장'으로 불리며 일하던 곳에서 마지막 회의를 진행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 상사 격인 '위원장님'과는 거리가 꽤 가까워졌는데, 그래서 그런지 최근 몇 주 동안 그는 밥을 먹거나 회의하는 중간에 본인 속 이야기를 마다 않고 꺼냈다. 본인의 커리어 시작부터 어떻게 지금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고, 요즘은 어떤 괴로움을 겪고 있는지 등등. 특히 감정을 실어 토로하는 이야기는 본인의 상사, 그러니까 회사의 대표에 대한 이야기다.


위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대표님은 나이가 많고 고집이 세고 변덕이 심하다. 80대인 그는 내가 만났을 때도 일은 그만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거동과 말이 어려웠다. 그런 상사를 모시며 위원장님은 그동안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한 곳에서 일해온 셈이다. 그리고 정치적 환경이 매일 요동치는 요즘, 위원장님의 무기력감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그런 그의 감정 섞인 토로를 들으며, 한편으론 그에게도 출구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사를 모시며 겪었던 억울함과 피로감을 어딘가에는 풀어야지. 그러려면 차분히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겠구나. 아 그게 나구나 싶었다. 회의 진행만큼은 차분하고 느린 말로 진행하는 위원장님은 한풀이 시간 때 만큼은 참았던 말을 우다다 내뱉었다. 쉬지 않고 10분 가까이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살면서 스트레스를 말로 풀 곳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상대가 되어줄 상냥한 누군가도 필요하다. 보통은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고 운이 좋으면 애인이나 가족이다. 반대로 쌓인 감정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을 때 사람은 점점 괴팍해져 간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불친절하고 예민하게 군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 정도까지 가지 않게끔 때론 울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시간과 어깨를 내어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이걸 '바람 빼주는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당신은 주변 사람의 바람을 얼마나 빼주고 있나? 내가 잘해서 묻는 건 아니다. 같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노력해보자는 뜻이다. 주변에 삶의 무게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이야기를 한창동안 들어보기만 하면 어떨까? 그 시간이 누군가에겐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의 순간이자 가뭄에 내리는 단비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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