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젊음을 그려내기

<마티아스와 막심>(2019) 리뷰

by Ax




마티아스와 막심


Matthias & Maxime


2019


자비에 돌란


(2020.7.23 작성, 2020. 12. 29 수정)



자비에 돌란의 8번째 영화가 2020년 7월 23일 정식으로 개봉했다. 작년 부국제에서도 놓치고, 올해 이것저것 할 게 많았던 터라 아직까지도 보지 못한 자비에 돌란의 8번째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감독하고 직접 주연을 맡기도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그렇게 주연을 맡아 연기했다.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들을 녹여낸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돌란의 '젊음'


우선 자비에 돌란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 돌란은 우리나라에서 '힙스터'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할 것이다. 칸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돌란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을 평가하는 것에 있어서 다소 시니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누군가는 좋아 죽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는 그 완성도에 의구심을 가진다.

개인적으로는 두 지적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스토리의 전개나, 혹은 연출의 구성에 있어서 분명 돌란보다 더 뛰어난 감독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31살의 젊은 감독, 그러나 벌써 8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자비에 돌란은 '젊음'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고수해오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감독이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젊음 고유의 취약함, 치기어림, 변덕, 폭풍 같은 감정 등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 오는 것으로 자신의 작품 정체성을 형성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글에서 리뷰할 <막시무스와 막심>은 그 전작들만큼/혹은 그 이상으로 돌란이 그려내는 젊음을 아릿하게 드러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래서 사실 돌란의 10년 뒤, 20년 뒤의 영화가 더욱 궁금해진다. 과연 돌란은 나이가 들어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채 위태롭지만 부러운 젊음의 단상들을 지금처럼 그려낼 수 있을까? 혹은 주제가 바뀌게 될까?


+) 그래서 나는 돌란이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소용돌이치는 폭풍같은 감정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이 참 좋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나도 나이를 먹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다..ㅎ

+) 요즘 드는 생각인데 영화는 진짜 취향 차이인 것 같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는 기본적인 영화 문법을 공부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마다 가져야 하는 평가의 잣대가 다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가 책을 대신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그 영화의 스토리가 결국 가져다주는 의미를 좀 중요하게 본다. 아니면 그 영화에서 포착해내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얼마나 나와 공명하는 바가 많은지가 중요하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돌란 영화를 좋아하게 된다. 아마 영화 공부를 제대로 많이 안 해 보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의 평가 잣대는 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게 아니라 그 영화를 볼 시점의 나에게 얼마나 더 와닿느냐에 기초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지도...


개인적으로 느끼는 자비에 돌란의 가장 큰 무기는 '젊음'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내세울 만한 것이라고는 어린 나이밖에 없다는 방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돌란이 젊기 때문에 다른 영화감독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젊음 고유의 감성들을 드러내는 데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취약함과 치기어림, 변덕, 불완전함과 같은 것들을 스크린에 옮겨 오는 것에 있어서 부러울 만큼 그 젊음을 만끽하고 있는 감독이 돌란이 아닐까. <막시무스와 막심>에도 순간 휘몰아치는 장면들로 그 폭발적인 젊은 날의 감정들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사실 이번 작품이 전작들과 비교해서 조금 더 마음에 들지만 동시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돌란이 그려내는 감정선이 조금 다듬어졌다는 점이다. 그의 감독으로서의 데뷔작인 <아이 킬드 마이 마더>에서는 돌란 그 자신이 연기한 주인공이 자신의 엄마와 싸우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러닝 타임 내내 두 사람이 싸운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마미>에서는 아예 주인공이 ADHD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전작들에서 유약한 인물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영화 전반에 위태로운 분위기나 연출을 깔아놓는 것이었다면,ㅡ그래서 다소 과잉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ㅡ<막시무스와 막심>에서는 간헐적으로/마침내 위태로운 그 감정의 면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훨씬 자연스러운 연출을 소화했다. 개인적으로 일생을 온통 감정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매사 화를 내고 울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장면이 많은 돌란의 영화가 맘에 들었었기에 약간 아쉽기는 했다. 돌란이 벌써 30살이 넘었구나 싶은 것도 이 지점에서 ... 생각이 많아졌다. ㅠㅠ



영화가 담아내야 하는 '관계'란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사실 인간관계에서 센스를 발휘하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나이를 먹으면서 터득하게 되는 수많은 것 중 하나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아마 그래서 매끄럽게 관계를 맺고, 불편한 관계들을 다시금 매끄럽게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돌란의 영화는 무척이나 젊다. 단순히 주인공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관계 맺기에 서투른 인물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티아스와 막심>은 그런 점에서 젊음을 그리워하고,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향수가 가득 밴 영화다. 마티아스와 막심이 친구의 여동생 때문에 키스를 하게 되었는데, 마티아스는 그 행동 때문에 학창 시절 이후 그간 묻어왔던 소용돌이를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불현듯 떠오른 감정을 이제서야 깨달았기보다는, 어른이니까, 어쨌든 그 감정들을 눌러담고 수많은 관계들을 안전하게 지켜내다가 실패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티아스와 막심 외에도 수많은 친구들과 가족들이 나오는 이유 또한 일종의 커뮤니티 속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마련한 연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결국 호주로 떠나는 막심의 결정은 한 발자국씩 어른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관객으로서 느끼는 저릿함은 돌란의 휘몰아치는 영화들을 보며 익히 느껴온 감정이기도 하다. 영화 막바지에서도 덮쳐오는 감정들이 부담스럽다거나, 과잉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어느 정도의 현실성, 즉 어른됨과 맞닿아 있는 요소가 끝까지 영화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막바지에 막심은 마티아스가 그린 그림을 발견하고, 공항으로 떠나는 결말 마티아스와 막심은 아프지만 웃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이처럼 그 몰아치는 감정들을 한편으로는 마냥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련된 방식으로 해소하고 그것을 관객으로 하여금 여운으로 느끼게 만드는 돌란의 발전된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여담. 돌란에게 '엄마'란


유독 돌란의 영화에는 엄마가 많이 나온다.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다. <마티아스와 막심>에서도 막심과 막심의 엄마와의 관계가 주요하게 그려진다. 다만 이 관계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영화 속 관계에서처럼 그 자체로 폭력적인 관계는 아니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막심은 엄마 때문에 수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겪고, 심지어는 외국에서 일자리를 얻기로 결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막심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엄마에 대한 걱정과 엄마로부터의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있다. <마미>나 <아이 킬드 마더>에서는 아예 대놓고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그 작품들에서도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고/듣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다.


그래서 돌란의 영화를 보자면, 태초에 관계맺는 대상으로서의 엄마는 젊음(서투름, 관계 이전)과 나이듦(유연함, 관계 맺기)의 경계에 서있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혹은 전자를 더 잘 살릴 수 있는 매개체로 돌란은 엄마라는 존재를 활용한다. 이번 작품이 그의 영화 세계, 즉 젊음에 대한 단상(혹은 젊음 그 자체)을 다루고자 하는 그의 바람을 보다 섬세하고 발전적으로 그려냈다는 수많은 평가들은 따라서 엄마라는 단일한 대상과의 관계를 넘어 보다 사회적인 관계들을 위주로 다루고 있는 영화의 스토리 덕분일 것이다.



나가며

항상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성장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나는 어른스러워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두와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는 것도 어렵거니와, 갈등을 드러내고 굳이굳이 그것을 해결하는 것 또한 너무나도 힘들다. 그래서 항상 위태롭게 살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 다른 젊음을 보며 나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위태로움을 본다는 것은 많은 위로가 된다. 다만 위태로움에 대한 위로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위태로움을 극복하자', 혹은 '너만 겪는 것이 아니다'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돌란의 영화가 자의식 과잉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온전하게 그 위태로움으로만 두 시간을 채우는 감독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돌란이 정말 오래 오래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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