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고생한다..
혹자는 그랬다. 육아란 30평짜리 집안에서 수감생활을 하는거라고.
정말로 수감중인 듯 했다. 심지어 혹독한 노역과 함께. 그나마 감옥에서는 노역 시간도 정해져있고, 끼니때마다 밥도 나오고, 잠도 재워주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받을 수 없었다. 나의 감옥은 안에서 문을 열고 언제든 나갈수있음에도 나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아이들만 두고 나갈수도 없었지만, 데리고 나가면 더 혹독한 상황에 놓이니까 말이다.
밖에 나가서 아이가 울면 죄인이 된것만 같았다. 식은땀 흘리며 우는 아이를 달래려 안절부절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전 유튜브쇼츠에서 아기엄마가 된 손연재가 이렇게 말하는걸 보았다. “차라리 올림픽을 나가는게 낫겠더라고요.” “올림픽 훈련은 그래도 잠은 재워주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올림픽 준비하면서 힘들다힘들다 했던게 반성되더라고요.”
그땐 이런걸 보면 남편에게 득달같이 들이밀며 ‘내가 이렇게 힘든일을 하고있는중이라고. 게다가 나는 연년생을 키우는 중이라고!’를 외쳤다. “힘든거 알지.”라고만 반응하던 남편에게 더 야속해서 시위를 하곤했다. 내 처우개선을 해내라고. 더 알아달라고. 사실 남편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있는중이었는데 말이다.
드디어 내가 내손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날이 왔다. 아이를 한 명만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드물게 외출의 기회가 왔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자, 둘째를 데리고 이마트 문화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 딱 한번. 아기엄마인 나에게 이마트가 런웨이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멀끔히 차려입고 나가는 그런 곳.. 물론 풀메이크업을 한다거나 거창한 옷을 입고 나가는건 아니었지만, 평소 집에서 하고다니는 꼴에 비하면 인간탈피수준이었다. 오랜만에 기름지지 않은, 샴푸향 나는 머릿결로, 늘어진 잠옷이 아닌, 외출복을 입고 나섰다.
그렇게 나선 마트에서, 텔레파시를 느꼈다. 나와 같은 아기엄마들. 그저 그녀들을 흘긋 보고 지나간게 다였지만, 가슴깊이 동질감을 느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녀와 내가 같은 눈빛을 보내고 있다는 직감이 왔다. ‘너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구나. 고생이 많겠다..’ 서로 굳이 말을 섞거나 건네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오랜만에 아이를 유모차에 앉혀 나왔으리라..
재미있는건, 마트에서 아기엄마들을 보면 옷차림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옷살일은 잘 없지만, 편해보며서 맘카페에서 추천받은 핫딜중인 옷을 샀는데, 다들 그러했나보다. 어느날을 똑같은 원피스에, 똑같은 슬리퍼를 신은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라 마트에서 서로 반댓길로 간적도 있다. 마트에 다녀온날, 노래가사인 듯, 랩가사인듯한 시를 블로그에 써놓은적이 있다. 엄마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면 참 위로가될텐데 하면서 말이다. 여기에나마 그때의 아무렇게나 써댄 미숙한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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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지 어디갔지
내 젊음 어디갔지
내 미모 어디갔지
내 피부 어디갔지
눈 감았다 뜨니 날 꼭 닮은 작은 아이와
내가 낳지도 않았는데 날 빼닮은 저 아저씨
그들의 이유식을 위해 오늘도 부스스 집을 나서
마트는 내 런웨이
오늘은 아기띠와 함께 멋지게 카트를 끌어볼까
힙시트 보단 예쁘겠지
이 린넨 원피스는 이번 s/s 신상
저 엄마도 나와 같은데서 샀나봐
저 엄만 아기띠 따윈 없이 카트에 앉힌 아이와,
더 우아하게 허리를 세우고 걷네
흙당근 코너를 지나가며 마주친 우리.
아무말없이 서로를 스쳐지나가지만.
1초간 스친 눈빛으로 알 수 있지.
너도 고생한다
너도 고생한다
2019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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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나도, 낙엽만 굴러가도 꺄르르대던 중고등학생일때가 있었다. 그녀도 나도 한창 빛나고 예쁠 대학생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나와 네가 아이를 기르는 엄마가 되었다니. 정말 대견하고 또 대견하다.
겉으로는 차가운 회색빛 아파트들이지만, 수많은 저 창문들 안에서 그때의 나와 같은 엄마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이제는 안다. 그녀들은 다음 세대를 이끌 아이들을 키우는 중이다. 우리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지금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을 매일 마주하는 나는 그것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안다. 그 힘든 와중에서도 아이들을 이렇게 훌륭하고 바르게 키워 내보낸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파이팅. 부디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