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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Sep 03. 2022

첫 집을 팔았다

이혼으로 잃어버린 또 하나

그대로였다. 차가운 아침 공기도, 출근길 정체도, 쉬지 않고 번쩍거리는 사내 메신저 대화창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블루베리 열매가 알차게 익어가던 너른 잔디마당을, 세월의 흔적을 품고 구불구불 굽어있던 소나무를, 흐드러지게 피던 붉은 철쭉을, 싱싱한 채소를 키워주던 뒷마당을 영영 떠나보내며 나의 지난 6년 세월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나의 젊음과 애환이 모두 담긴 집을 떠나보냈는데 세상은 어제와 하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허무하게 했다.

동네에서 마당 넓은 집이라 불리던 그 집을 처음 만났던 2016년의 늦은 봄, 집 앞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붉은 철쭉에 홀려 앞뒤 재지도 않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나는 그 젊은 패기와 신중하지 못한 결정에 대해 한동안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건축한 지 20년이 다 된 집이라 하자보수에 가까운 리모델링을 했고, 담을 쌓으려고 측량을 하는 과정에서 옆집이 우리 집 마당의 일부를 자기네 창고처럼 쓰고 있고 우리 집터의 일부는 뒷집 땅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뒷집 어른께서는 예전에 지어진 집이다 보니 건축허가가 이리 허술하게 났다고, 젊은 사람들 마음 쓰게 된 것 같은데 편히 살아도 된다고 너른 마음으로 양해를 해주셨지만 옆집과는 담을 쌓는 문제로 얼굴을 붉혔다. 거기다 리모델링을 처음 맡았던 업자가 공사를 하다가 손을 떼고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돈도 잃고, 공기도 터무니없이 길어져 생각지도 못했던 월세 살이를 잠깐 하기도 했다. 다행히 좋은 업체를 새로 구해 공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발생한 데다 겪지 않아도 될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겪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집에서는 매 순간이 행복했다. 봄에 계약한 집을 계절이 바뀌어서야 들어갔는데 거실 창으로 불어오던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남들은 시골이라 무시해도 버스 정류장이 코 앞에 있고,  편의점과 마트를 걸어서 이용할 수 있고, 상하수도, 도시가스가 공급되어 사는 동안 불편함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대출금을 갚느라 허덕이긴 했지만 집이 준 행복에 비하면 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첫째를 자연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웠고, 씩씩하고 기운 센 둘째를 낳았다. 그 집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나의 젊음이 모두 깃든 곳이었다. 비록 둘째를 낳고 너른 잔디마당의 관리가 어려워 세를 놓고 떠나왔지만, 첫째에게도 나에게도 그곳은 돌아가야 할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이혼 후 재산 분할을 위해 집을 내놓고 나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 왔던 것도 사실이다. 나의 미련 때문인지, 집은 일 년 가까이 팔리지 않고 내 애를 먹였다. 그러다 팔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광고를 거둬들인 지 석 달만에 집 살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광고를 내다보니 거둬들인다고 거둬들였는데 부동산 한 곳에서 광고가 나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말이 오고 간지 일주일 정도 됐을까 집을 파는 것도 살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집이 팔리기 전에는 얼른 팔아서 아이 아빠와 연결된 고리 중 하나를 끊어버려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를 한 채 사서 세를 받을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막상 팔아버리고 나니 모든 게 두렵고 어렵기만 했다. 나는 이제 내 명의 집도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집 한 채 사보겠다고 억대의 빚을 내러 은행 문턱을 겁 없이 드나들던 여자는 사라지고 겁쟁이만 남아 있었다. 이혼으로 인해 내가 잃어버린 것이 하나 더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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