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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Aug 20. 2022

궁금증을 대하는 자세

남편은 없지만 애 아빠는 있다.

지난 토요일 아이들과 함께 생태습지 탐방에 나섰다.

한여름, 그것도 비구름이 한반도 위쪽에 세찬 비를 쏟아내고도 모자라 자꾸만 아래로 내려오는 습한 날에. 불참할 수도 있었지만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사전 연락도 없이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공재를 영위하는 국민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새벽부터 애들을 깨워 탐방 장소로 향했다.

적고 보니 겁나 비장하고 굉장히 나라 사랑하는 느낌 풍겨서 좀 우스운데... 사실이 그렇다. 내가 아주 작고 귀여운 월급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여행과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데는 공공재의 덕이 크다. 덕을 입고 있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 않겠나.

거기다 평소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상수원 보호구역의 습지를 일 년에 딱 한번 연꽃이 피는 이 여름에 가볼 수 있는 기회인데 놓치기는 정말 아깝다.

8시에 집결해 조를 배정받고 총 5개 조 중 3조에 속해 탐방을 시작했다. 평소에 해발 1000미터 산 정상까지도 오르는 애들이니까, 큰 걱정을 안 했다. 그런데 탐방이 시작되자마자 빵이 녀석 집에 가자고 안아달라고 난리가 났다. 이제 거의 내 몸무게의 절반을 차지하는 녀석을 업고 2km가 넘는 길을 걷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꾸 찡찡거리면 같은 조에 배정된 다른 탐방객들에게 피해가 될 게 분명하니까 안 업어줄 수가 없었다. 뭐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다. 내 새끼 내가 챙기는 건 당연한 거고 탐방 일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습한 날에 습지 탐방을 선택한 나의 책임이니까.

그런데 체구도 크지 않은 여자가 대여섯 살은 족히 돼 보이는 아들아이를 업고 안고 길을 오르내리는 게 일부 어른들 눈에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빵이를 안고 길을 가는데 뒤에서 귀에 확 꽂히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애들 아빠가 없나? 왜 엄마 혼자 이런 데 애를 데리고 왔지?"
"그러니까. 애들 엄마가 힘들겠구먼. 몸도 약해 보이는데....."

두 분이서 나누는 대화라고 하기엔 소리가 너무 커서 똥이와 빵이도 생생하게 들었을 것이다. 많이 거슬렸다. 하지만 모르는 체했다. 모르는 체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간혹 어른들의 궁금증이란 아이들의 호기심보다 커져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이 그랬다. 안쓰러움이 궁금증이 되고 그 궁금증이 풍선만큼 커져서 머리 위를 떠돌다 나중엔 무게를 못 이기고 우리 앞에 떨어졌다. !!

"얘야, 너희 아빠는 왜 같이 안 오셨노? 주무시나? 일 가셨나? 안 계시나?"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똥이 옆으로 다가와 물으셨다. 위협적이지도 상스럽지도 않은, 불순한 의도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 말로부터 똥이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어막을 만들어 칠까? 찬바람이 쌩 불도록 매몰차게 아빠 없어요라고 말해서 달아오른 궁금증의 열기를 한 순간에 식혀버릴까? 이런 생각도 해봤지만 안 될 말이었다. 아빠는 있으니까. 나한테 남편이 없는 거지 애들한테 아빠는 있다. 순간 무슨 말로 이 상황을 벗어날지 생각하는 틈에 똥이의 냉랭한 대답이 들렸다.

"아빠? 뭐 하는지 몰라요."

머뭇거리거나 위축됨 없이 당당한, 우리 아빠 뭐하는지 할아버지들이 알아서 뭐할 거냐? 요즘 같은 세상에 개인정보 지나치게 캐묻는 건 실례인데 그것도 모르냐는 듯 꾸짖는 말투였다. 어르신들은 말없이 조용히 뒤로 물러나셨다. 그리고 잠시 후, 확신에 찬 두 분의 대화.

"아빠랑 같이 안 사나 보네."
"그래. 애 엄마 혼자 키우나 보는구먼."

똥이 속이 어땠을지 물어보지 않아 확언할 수는 없지만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똥이의 그 당당한 말투 덕분에 나는 힘을 얻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 마주할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 폭탄을 뻥 하고 걷어찬 다음 아무 일 없던 듯 가던 길을 걸어갈  것 같아서... 내가 생각보다 한부모 엄마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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