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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Sep 12. 2022

나는 잘 쓰기로 했다

한부모 엄마의 가계 운영

임금협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 임금인상률은 1%가 채 되지 않았다. 아마 내년도 비슷할 것이다. 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어떻게 돈 나갈 구멍이 활짝 열려 있는 아이 둘을 무리 없이 키워낼 수 있을까?

저 거창한 질문에 내가 찾아낸 답은 ‘잘 쓰기’이다.
풀어서 말하면 나의 자질을 잘 쓰고, 내가 가진 재화를 잘 쓰고, 공공재를 잘 찾아 쓰기로 한 것인데 소박하지만 현실적인 답이라 생각한다. 인정하긴 싫지만 한부모가 되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졌다. 예전처럼 빚을 내서 부동산 투자를 할 자신도 없고, 월급이 적다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와 이직을 준비하거나 창업을 할 만큼 젊지도 않다. 불행 중 다행은 내가 이혼을 누구 한 명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돌리지 않을 만큼 이혼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나의 성격, 내가 가진 소질 등 자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 정리된 답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완전히 밑지는 장사는 없는 건가?

이혼에 대한 성찰을 통해 알게 된 나란 사람은 꽤 계획적이고 바지런하며 이런저런 생각 많고 규율을 중시하는 타입이었다. 즉흥적이며 느긋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던 아이들 아빠 눈에는 내가 마누라가 아니라 꼰대미 넘치는 사감선생으로 보였을 것이다. 내재적 이혼 사유에 대한 이야기는 각설하고, 아무튼 나는 아이 아빠와 내가 서로를 덧정 없는 존재로 여기게 만든 나의 자질을 가계 운영에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우선 가계부를 꼼꼼하게 썼고 온/오프라인 상점의 할인정보를 잘 살폈다. 그리고 생필품 및 자주 먹는 가공식품들의 가정 내 재고량을 정확히 파악했다. 생수, 물티슈, 멸균우유, 시리얼처럼 소모가 잘 되는 물품이나 깡통 햄, 세탁세제, 키친타월 등 유통기한이 긴 제품은 할인 행사를 기다렸다가 한 번에 넉넉하게 사들여 동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신선식품은 퇴근길 마트에 들러 타임 세일하는 것 위주로 구매해 가급적 당일에 소진했다. 적다 보니 갑자기 분위기가 어렸을 적 읽은 퀴리 부인 위인전(퀴리 부인의 유년 시절, 부인의 어머니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자식 다섯을 키워내느라 물건을 헐값에 살 수 있는 늦은 저녁에만 시장에 가셨다고 한다.)처럼 대단히 비장하게 흘러가는 듯한데 퀴리 부인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기 위해 늦은 시간에 시장을 가셨다면 나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달까? 사실 이렇게 해서 얼마를 아꼈다고 정확히 내세울 수는 없지만 아이들과 함께 마트 가는 횟수에 비례해 쓸데없는 지출이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무리 한 푼 아껴보겠다고 요리 재고 조리 재며 애써봐도 벌어들이는 게 작으면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가 아이들을 내버려 두 야밤에까지 돈 벌러 다닐 수도 없는 일이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인형 눈알이라도 붙여야 하나? 사실 그 생각도 잠깐 했다. 하지만 단발성으로 끝낼 게 아니라면 시간을 들인 만큼의 물질적 보상이 따라오거나 그것을 대체할 자기만족이 있는 일이라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재미 삼아 보냈던 라디오 사연이 당첨돼 사과 상자와 홍삼 진액 등의 선물을 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글을 썼다. 내가 살고 있는 지자체의 서포터스가 되어 지자체 블로그에 지역 내 관광명소나 문화행사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겪은 일을 써서 작은 공모전에 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약간의 수입이 생기기도 했지만, 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 것은 글쓰기를 통해 내가 점점 바로 서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살던 집을 팔고 재산분할을 하면서 통장에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이 들어왔다. 마흔 나이에 집 한 채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이건 내가 집의 방해 없이 내 돈에 대해 절대적 지위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나는 이 돈을 잘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인이 한 푼 더 벌어보겠다고 인형 눈알 붙일 생각까지 했는데 돈도 부지런히 움직여 제 몫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투자 방법을 고민하던 시기, 회사에 누가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큰 아이 같은 반 누구 엄마가 테마주를 사서 돈을 몇 배나 부풀렸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이 유난히 많았다. 나도 욕심 있는 사람인지라 코인이나 테마주의 유혹에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새카만 눈동자 넷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처지에 남들 장에 가니 거름 지고 따라간다는 식으로 투자에 뛰어드는 건 절대 안 될 말이었다. 투자해서 돈 벌었다 할 정도가 되려면 그에 비례한 손실 부담을 감수했다는 의미인데 그 당시 나는 투자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도 부족할뿐더러 손실을 감수할 만큼의 배포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가진 돈을 한 번에 예치하지 않고 시중 금리 추세를 살피며 예금통장을 하나씩 만들었다. 그리하여 만기일도 금리도 예치액도 다른 예금통장이 스무 개 가까이 생겼고 그중 일부는 내게 벌써 만기의 기쁨도 안겨주었다. 하지만 모든 돈을 예금으로만 굴리기엔 뭔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조금 더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경제 뉴스를 정독했다. 그리고 주식 시장 및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생길 무렵,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우량주 가운데서도 배당금이 높은 주식을 골라 사들였다가 수익이 올해 배당 예상액에 근접하면 기회를 봐서 파는 방식이었다. 큰 욕심을 내지 않으니 수익률은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중고거래 어플을 적극 활용했다. 친정으로 급하게 합가를 하느라 내게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살림살이가 제법 있었다. 분가를 하면 또 쓰이게 될 물건들이었지만 결혼 생활 중에 용하던 물건을 힘들게 보관했다가 다시 쓰고 싶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도 보기 싫었다. 물론 갖다 버릴 수도 있지만 갖다 버리는 데도 돈이 들지 않는가? 손 때가 제법 묻은 물건은 무료로 나누고 새것과 다름없거나 비싸게 샀던 물건은 적당한 가격에 팔았다. 과거의 흔적이 비워진 자리를 돈이 채워갔다. 팔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나중엔 입던 빤쓰 빼고 다 팔아버릴 기세로 물건을 올리기도 했는데 한바탕 몰아치던 중고거래 어플의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자연스레 끝을 맺었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지자체 서포터스 활동을 하면서 더 분명히 알게 된 사실은 요즘은 무료 혹은 일이만 원 안팎의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공공시설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공공시설이라 해봐야 공원, 도서관 정도가 전부였는데 요즘은 캠핑장, 영화관, 키즈카페, 물놀이장까지 아이들과 이용 가능한 공공시설의 종류도 다양하고 관리 상태도 좋은 편이었다. 거기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 교실을 운영해서 내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이 한정된 인원을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양질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다른 집 엄마, 아빠들에 비해 재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내게는 다행히 세상의 소식을 빠르게 알아채는 귀와 눈이 있었고 튼튼한 다리와 재빠른 손이 있었다. 그덕분에 천 원, 오천원, 육천원, 만원에 지나지 않는 돈으로 아이들에게 마술 공연, 영화 관람, 캠핑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다. 


사실 이렇게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가 아이들의 성장 발달과 진로 선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나도 모른다. 배운 것들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할 수도 있고, 말 그대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으며, 운이 좋아 그 기억이 진로 선택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함께 나눌 소소한 추억이 많아졌고, 우리 셋은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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