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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Jan 23. 2023

내게도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2)

혼자라 힘든 날들

"니.... 유지비 많이 들 걸 몰랐나?"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거기다 그땐 둘이 벌었으니 유지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고.... "

"하기사. 그래."

"머지않아 이혼할 줄 알았으면 이 차 안 샀겠지.. 근데 그땐 그  새끼가 그 년이랑 다시 또 바람날 것도 몰랐고 내가 못 참고 이혼할 것도 몰랐잖아. 푸하하하."

"미친....ㅋㅋㅋ. 니 브런치에 너무 격식 갖춰 쓰려 노력하지 말고 내랑 통화할 때 이 느낌 그대로 글 쓰면 대박 날건데 참 아쉽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온 라니와의 퇴근길 통화에서 근래 가장 많이 등장한 소재는 차였다. 한 때 나의 드림카였다가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그 차. 엔진오일 교환에 사십만 원 가까운 돈이 든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그 차는 내게 언제든 한 번은 터질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만큼 여유롭지 못했고 나는 결국 차를 팔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출퇴근 거리가 왕복 삼십 킬로미터가 넘는 데다 집에서 회사까지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았기에 차는 생계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것은 차를 파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차를 사야 한다는 걸,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시기가 딱 들어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뜻했다. 


사실 수입차의 경우 보증기간이 끝나면 감가가 많이 된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기에 보증기간이 끝나기 전에 차를 바꾸려고 작년에 국산차 출고 예약을 걸어 놓았다. 하지만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순번 열두 번째에서 시작한 나의 출고대기 순서는 다섯 달이 넘는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 새 차가 출고되기까지 넋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결국 중고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타던 차의 중고가 시세는 어느 정도인지 시장 조사도 해 볼 겸 적합한 중고차 매물이 있는지 알아도 볼 겸 중고차 매매상사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여자 혼자 차를 사러 중고차 매매상에 들르는 게 소위 말하는 호구 잡히는 짓 같아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그런 망설임도 남편 있는 여자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이들이 축구 수업을 간 토요일 오전 화장을 곱게 하고, 단정한 셔츠에 바지를 입고 코트까지 장착한 다음 집을 나섰다. 사회생활 좀 해 본, 세상 물정 좀 아는 그런 여자니 호구 잡을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고차 매매단지 곳곳에 무리를 지어 담뱃불을 나누고 있는 중고차 딜러들의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하이에나 떼와 마주한 팔라처럼 멈칫해버리고 말았다. 목석처럼 굳어 서 있는 내게 딜러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차 보러 오셨습니까?"

"."

"만나기로 한 딜러 분이 있으세요?"

"아니요. 그냥 중소형 SUV 괜찮은 물건이 있는지 보러 왔어요."

"그럼 저희 쪽에 차량 몇 대가 있는데 잠시 기다리시면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딜러를 따라 차량 몇 대를 봤지만 딱 마음에 드는 차는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본론을 꺼냈다.


"차를 사기 전에 제가 타던 차를 먼저 팔아야 해서요. 19년 11월식 ㅇㅇㅇㅇ인데 매입해 주실 수 있나요?"

"요즘 고객님들이 수입차를 잘 안 찾으세요." 

"스크래치 하나 없이 관리한 무사고 차량이에요."


딜러와 나 사이의 수평 관계가 일시에 무너지고 딜러에게 차를 사달라 사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리 지어 서 있는 하이에나들의 시선이 자꾸만 뒤통수를 따갑게 했다.


차를 둘러본 딜러는 내게 고금리 탓에 중고차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기 시작했고 매매상에서도 중고차를 매입하기를 꺼리는 상황이며 설사 매입을 결정하더라도 만족할만한 가격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덧붙여 중고차 시세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니 매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하루빨리 처분하는 것이 손해를 덜 보는 길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매매상을 통해 판매를 하는 것보다 개인 간 거래를 하는 것이 적어도 이삼백만 원 정도는 더 좋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알려주었다. 친절하고 긴 설명을 덧붙여 차를 매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절망만 안고 단지를 나오는데 들어갈 때 보았던 딜러 무리의 시선이 끈질기게 내 차를 따라붙었다. 그중에 한 명은 손가락으로 내 차를 가리키며 부지런히 입을 움직였고 그중에 몇은 히죽거렸다. 비웃음거리가 된 것 같은 기분, 저들에게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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