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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리 Jan 23. 2023

내게도 남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3)

혼자라 힘든 날들

"신발끈. 그래. 아직 중고차 매매단지는 여자들이 마트 들르듯 그렇게 쉽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 몰라... 갔다 오니까 진 빠지더라. 괜히 갔다 싶고.... 왜 옛날 할매들이 할배들한테 두들겨 맞으면서도 뭐니 뭐니 해도 서방 그늘이 최고다 소리하는 게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조금 이해되기도 하고...."

"니.... 많이 무너졌네. 가기 전에 그 새끼한테 좀 같이 가 달라 부탁해 보지 그랬노?"

"야! 니 지금 무슨 소리하는데? 그 새끼한테 그런 부탁할 만큼 친하지도 않고 친해지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같이 가 달라면 그 새끼가 나보고 꼴좋다 하겠지. 싫어!!"

"아... 미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들 아빠는 내가 도움을 청하면 아무런 말 없이 따라가 줄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렵게 분리된  삶의 영역에 어설프게 그를 끌어들이기도 함께 나눌 대화 소재를 만들기도 싫었다. 너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오기이기도 했고 이혼이라는 결정을 책임지는 나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혼자 해내고 싶고 해내야만 하는 일인 걸 알면서도 중고차 매매단지를 다녀오고 나서 나의 몸과 마음은 많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라니의 말처럼 많이 무너져 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할 일은 해야 했기에 중고차 판매 플랫폼을 이용해 차를 내놓았다. 개인 판매로 물건을 올리고 딜러들이 모인 공간에 경매로도 내놓았다. 개인 판매는 동급 차량 대비 백만 원 정도 저렴하게 내놓았음에도 조회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딜러들의 입찰 드문드문 들어오고 있었는데 입찰가는 내가 차량을 구매했던 가격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결국 그나마 최고가로 입찰한 딜러에게 차를 팔기로 했다.


그리고 매매상에서 만난 딜러의 조언대로 개인 간 매물을 검색한 끝에 매매상 물건 대비 이백만 원 정도 저렴한 차량을 찾았다. 20년 10월 출고되어 무사고로 이만 키로 정도 주행한 흰색 SUV차량, 위치는 대전. 울산에서 편도로 네 시간가량 걸리는 위치에 차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차량 올리신 것 보고 연락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유"

"보험이력을 조회해 봤을 땐 무사고로 확인되던데 침수 피해를 입거나 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은 경미한 사고 건이 있을까요"

"아이구. 없어유. 없어. 새차나 다름 없어유~! 우리 누나 찬데 내가 대신 올린 거여. 매매상 거치면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손해니까 직거래 하시면 좋아유."

"아. 네..."

"제가 사실 ㅇㅇ자동차 신차 딜러여유. 영업하는 사람이라 신용을 생명같이 여겨유. 믿고 사도 돼유."

"아. 네... 저는 울산이라 거리가 너무 멀어서요. 사겠다고 어느 정도 다짐이 서야 올라 갈 것 같아요. 가격 조율을 조금 해 주시면 마음 먹고 먼 길 가 보겠습니다."

"아이구. 울산서 오시는 거구만유. 음. 그럼 내가 사십만원 빼드릴게. 매매상 통하면 이런 물건 이 가격에 절대 못 사유. 알아보셨을 거 아니어유~?"

"네. 토요일 아침에 차를 보러 가도 될까요?"

"그럼유. 오셔유. 주소 찍어 드릴게유. 그날 뵈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어색하면서도 한편 묘한 신뢰감을 가져다 주었다. 시골 사람은 순박하고 정직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고 시골사람으로써의 동질감을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뭐 어쨌든 차에 대해 아는 것 없는 내가 중고차를 사기 위해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대전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차는 이미 팔았고 내게 퇴로는 없었다.

 

하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대전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위치에 있었다. 차를 팔기로 한 분이 전화로 대전역에 태우러 갈테니 열차 내리기 전에 연락을 달라고 하셨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대우 받아보지 못한 인생은 이런 친절에 부담감이 들기 마련이니까.... 너무 친절한 사람은 그 이상의 대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속이 다 곯은 것도 모른 채 젊어 보이는(직급이 낮아서 그런지 옷차림 때문인지 대부분 그렇게들 봐 주신다) 몸땡이만 보고 납치해서 어디 몰래 팔아 넘기기라도 하면 안되니까.....하하.


아무튼 그렇게 열차와 지하철, 버스에 이르기까지 대중교통 삼형제를 갈아타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차를 사러 가기 전에는 중고차 매매단지에 갔던 날 딜러를 통해 알게 된 사고차량 구별법이나 차량 테스트 순서를 수없이 되새기며 깐깐한 구매자 행세를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구수한 사투리로 나를 맞이한 판매자가 차량 내 세부 기능을 꼼꼼하게 알려주고, 엔진룸까지 열어 보여주는 바람에 열심히 짜온 각본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차체에 자잘한 스크레치가 많긴 했지만 약품을 사다 닦으면 깨끗하게 지워질 것 같았고 무엇보다 차량 내부가 정말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개구쟁이 둘이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내 차와 비교하니 이 차는 새 차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차를 사기로 결정했고 판매자는  울산까지 차를 운전해 갈 나를 위해 네비게이션 업데이트도 해주었다. 그리고 매매를 위한 절차가 모두 끝나갈 즈음,  그에게서 명함 한 장을 받았다.


"이 차 한 이삼 년 타시다가 다음에 새 차로 바꿔유~! 그럼 딱 좋아유. 제 명함이유. 차 바꿀 때 연락하셔유."

"네. 감사합니다."


영업맨의 놀라운 영업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 하며, 삼 년 뒤 내 경제적 환경은 어떨지, 삼 년 뒤 이 명함의 주인공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부질 없게 느껴져 접어 버렸다.   전 내가 이혼하게되리란 사실을 꿈에도 몰랐듯 삼 년 후 나의 삶 또한 아무도 모를 일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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