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변정정희
Q. 제빵학원 다음에 복귀한 일은 어떤 분야였나?
그때는 방송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송이 아니면서 글 쓰는 일을 찾았는데, 그렇게 취직한 곳이 디지털 교육 회사였다. 새롭고 창의적인 영역을 개발하려고 나를 영입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회사에서 작가라는 자리는 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뭘 시켜야 할지 그분들도 잘 몰랐다. 나도 출근해서 뭘 하긴 해야 하는데 딱히 할 건 없고 곤란했다. 그래서 거기 있던 교육 관련 책을 참 많이 읽었다. 할 일이 없는데 그렇다고 놀 순 없으니까.
Q. 작가는 거의 프리랜서 근무 형태로 알고 있는데 그 회사는 아니었나?
상주였다. 상주라고 해도 보통 작가들은 직장인처럼 9시 출 근, 6시 퇴근이 거의 없다. 누가 출퇴근 시간을 따로 말하지 않아 당연히 이전 일터처럼 실제 업무시간에 맞춰 출근했는데 그러기를 일주일쯤 하니 높으신 분이 나를 호출했다. 여기 분위기가 있으니 8시 30분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라고 주의를 들었다.
Q. 처음부터 그런 부분을 확실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찮았나?
그래도 좋은 분들이라 내 편의를 많이 봐줬다. 내가 답답해하는 걸 알고 중간에 공원에서 바람 좀 쐬고 오라거나, 카페에서 글 쓰다 오라고 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상무님은 나를 싫어하셨다. 출근 시간이 8시 30분인데, 상무님이 매주 8시 반에 회의를 열었다. 회의실은 내가 일하는 사무실과 다른 건물이라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회의실에 가면 시간이 빠듯해서 가끔 상무님보다 늦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싫어했나?
상무야 참석만 하면 되지만 회의 준비하는 직원들은 더 일찍 출근해야 했을 텐데…. 윗사람 시간은 금이고 직원들 시간은 똥인가….
Q. 그래서 그 회사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뭘 해야 할지 몰라 교육 관련 책을 읽었던 기간은 처음 며칠뿐이었다. 적응기간이 끝나고 나서는 작가와 기획자를 넘나 들며 밤 12시까지 일했다. 그 회사와 계약이 끝나갈 때쯤 한 공중파의 DMB 프로그램에서 작가 제의가 들어왔다. DMB는 최전방 방송처럼 상업적이지 않고, 방송국에서도 별로 신 경을 쓰지 않아서 제의를 수락했다. DMB 프로그램의 작가로 2년 반 동안 일하면서 하루에 책을 3권 읽고 그 책을 소개하는 원고를 썼다. 업무량이 많아 힘들었지만 원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건 참 좋았다.
늦게까지 일한 다음 날은 좀 늦게 출근하게 해주지. 밤 12시까지 일해 도 야근 수당 안 줬을 것 같은데….
Q. 다큐멘터리 작가, 책 소개 프로그램 작가, 라디오 작가, 기업 사내방송 작가, 광고기획 작가 등 작가로서 다양한 일을 했다. 어떤 글을 쓰는 게 가장 즐거웠나?
확실히 창의력이 필요한 창작이 가장 즐겁다. 최근에 웹드라마 제의를 받아 시놉시스를 썼는데 그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Q. 다시 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라디오 작가다. 규칙적인 부분이 좋다. 글도 매일 쓸 수 있고.
Q. 규칙적인 게 좋다고? 규칙적인 회사에서 답답해하지 않았나? 의외다.
규칙적인 일이 답답한 것이 아니다. 딱히 마쳐야 하는 일이 없음에도 굳이 그 시간에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상황이 답답 했다. 출근시간이 8시였던 라디오 프로그램도 했었다. 그날그날 출연자 발굴부터 기획 회의, 섭외, 대본, 인터뷰 등 정말 알차게 바빠서 재미있었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매일 글을 쓰는 것도, 청취자와 소통하는 것도 좋았다. 라디오는 듣는 사람들이 거의 정해져 있다. 사연 보내는 사람, 직접 참여하는 사람, 통화하는 사람… 직접 대면하지는 않아도 모든 청취자와 매일 만나는 느낌이었다.
Q. 이미 알고 지낸 시간이 상당한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얼마 전에 어린 딸의 희귀병으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출연 당시 어땠는지 여쭤봤는데, 그 방송 덕분에 딸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고, 응원해주는 분도 많다는 것을 알게 돼서 정말 좋았다고 말하더라. 나는 방송이 사람을 이용하는 게 싫었는데 오히려 방송을 이용해 사람을 돕는다 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무엇이든 100% 나쁘다, 좋다 그렇게 나눌 순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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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 어떤 것이든 100% 좋다, 나쁘다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참는 사람과 때려치우는 사람도 사실 정반대 개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참고, 동시에 때려치우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오늘 때려치워도 내일은 참을지도 모르고, 또 오늘 참은 것을 내일은 때려치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에 대한 참음은 또 다른 어떤 것의 때려치움이 될 수도 있다.
간단하게 칵테일 한잔으로 시작했는데, 인터뷰 막바지 즈음 에는 식탁 위에 우리가 먹어 치운 음식 접시가 가득했다. 무 려 14년 동안의 이야기였다. 밝았던 창밖이 캄캄해질 때까지 그녀의 참음과 때려치움의 역사(어쩌면 성장기)가 이어졌다.
그녀는 시를 쓰기 위해 다른 글을 써서 돈을 벌었고, 주어진 일을 수행할 때 생기는 인간적 갈등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 달리기를 때려치우고 난 후에야 그동안 무엇을 어떻게 참아왔는지 스스로에게 열어 보일 수 있었다. 동의할 수 없는 프레임에 갇히기를 비로소 때려치운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참고 또 때려치우는 중이다. 결혼했으니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거의 모든 한국인의 조언(?) 받아들이기를 때려치웠고, 아빠의 성을 따라야 하는 제도에 순응하기를 때려치웠다. 모두 다 가는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자 따라오는 타인의 조롱 섞인 불신을 참아내고 있다.
이렇게 참고, 때려치우는 선택들로 짜인 세계가 그녀의 삶을 촘촘히 엮어나가고 있으며 그 삶 위에서 또다시 선택은 반복된다. 그렇게 채워지는 게 어디 그녀의 삶뿐이랴. 이런 선택들이 모여 인생의 결을 만들어가고 우리는 그렇게 늙는다.우리는 오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참음과 때려치움의 역사를 쓰고 있다.
각기 다른 재료로 이루어진 밀가루 반죽이 손안에서 둥글려지다가 숨을 쉬는 하나의 생명을 부여받는 것처럼 그녀의 인터뷰로 전해진 진심의 조각이 어느 순간 당신이 바라는 무언가에 합쳐져서 새로운 생명력으로 탄생하길 바란다.
조금씩 발견해가는 ‘나’를 만나기를….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