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Way to Spain
* 이 매거진은 2년 전의 짧은 기록을 바탕으로 한 글임을 밝힙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던 촌뜨기는 어느 날 갑자기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 촌뜨기는 나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 본 곳이라고는 제주도뿐이었고(그것도 수학여행으로), 그렇다 보니 여행 상식도 전무했다. 유류할증료가 무엇인지, 보딩 패스가 무얼 말하는 건지, 택스 리펀은 꼭 받아야 하는 건지.. 애초에 그런 용어들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그런 주제에 용감하게도 첫 해외 여행지를 스페인으로 정한 것이다.
해외여행 입문자들은 첫 여행지로 일본을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국에서 가깝고, 치안 좋고, 물가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데다가, '가깝고도 먼 나라'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있으니. 그런데 나는 무슨 고집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아시아는 죽어도 가기 싫었다. 한국과 비슷한 문화권, 그리고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나 보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여행에 내공이 깊으셨던 내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다른 곳은 몰라도 유럽을 간다면 모름지기 스페인, 이태리, 터키는 꼭 가보아야 한다. 그곳들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생각해도 조금 극단적인 말씀이시긴 하다.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태리는 아버지 은퇴 후 가족여행으로 가기로 했으니 보류했고, 개인적으로 터키보다는 스페인이 더 궁금했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스페인으로 결정했다. 여행할 곳이 정해지자, 준비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항공권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나였지만, 일단 교통편이 확정되지 않으면 그 어떤 준비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인터파크 항공을 이용해서, 120만 원짜리 왕복 편 바르셀로나 in-out 티켓을 구매했다. 물론 항공사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국적기가 아닌, 영국항공이었다. 보통은 효율적인 시간 분배를 위해 in-out을 다르게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그런 기초적인 상식도 없었다. 비용이나 시간 절감 면에서 썩 완벽한 예약은 아니었다. 초행길이니까.. 하하. 나중에는 잘 알아보지 않은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해야 했다.
유럽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모 네이버 카페에 가입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저렴한 가격에 티켓팅을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내가 타고 갈 항공사는 수화물 분실로 매우 악명 높은 항공사라는 것을. 거기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서 환승이었으니, 뭐 초행길 치고는 빡센 여정임은 확실했다. 그럼에도 나는 같이 떠난 친구와 함께 제법 잘 해냈다. 짧은 환승 시간이었지만 transfer도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척척 해냈고, 예정대로 환승 후 밤늦게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갈 때는 영국 항공을 이용했다. 히드로 공항에서 바르셀로나로 넘어가는 경유 편을 타고 밤 8시 30분이 넘어서야 BCN 공항에 도착했다. -2014.10.22 여행기록
공항 입국 수속 담당 직원이 Hola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여권에 바르셀로나 도장을 쿵 찍어주었고, 우리는 비로소 이 곳이 스페인임을 실감했다. 우리는 다음 날 바로 마드리드로 출발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최악의 일정이었다. 군말 없이 따라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숙소를 까탈루야 광장 근처로 잡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호스텔을 예약한 건 나름대로 좋은 선택이었다. 좋은 숙소를 예약한 덕에 다행히 첫출발이 좋았다. 호스텔 주인은 Pink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던 금발 언니였는데, 우리가 불쌍해 보였는지 숙소 요금도 깎아주었다. (비록 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우린 고맙다며 신나서 호들갑을 떨었다.)
잠들기 전 티브이를 틀었는데 익숙한 한국 프로가 아니라 스페인의 티비 프로가 나왔다.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이 참 좋았다. -2014.10.22 여행기록
우리가 묵었던 객실은 개인 욕실이 있는 더블베드의 좁은 방이었다. 그렇지만 긴 비행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우리는 당장 몸 누일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짐을 정리하고, 씻고, 순식간에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