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2020년 6월, 내 생애 두 번째 사업자 등록증을 내고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했다.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나는 폐업 신고를 준비 중이다.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흑흑. 바닥에 주저앉아 가련한 주인공처럼 눈물이라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망할 줄 알고 시작했던 사업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무덤덤하다. 오히려 잘 되면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업의 사, 고객의 고 자도 모르던 상황에서 시작한 사업이니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영업자의 꿈을 꾼다. 카페를 차려볼까, 꽃집을 낼까, 유튜브나 할까 등등. 물론 그 선택지에는 스마트스토어나 해 볼까? 도 포함된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농담 삼아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일은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럼 무얼 하면서 먹고살아야 할지는 모르겠고,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창업을 꿈꾸는 것은 심리적으로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지만, 퇴근 후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유튜브를 시작하거나 부업을 하시는 분을 보고 리스펙트 하는 이유.)
그럼 나는 왜 스마트스토어를 시작했을까? 일단 첫 번째, 예전부터 집 꾸미기나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건축에 흥미가 많아 그 분야와 관련된 오프라인 셀렉트숍을 차리고자 하는 로망이 있었다. 두 번째, 퇴사 후 유학을 떠나려고 했지만(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어학원을 다니며 준비를 했었다.) 코X나가 터졌고 해당 계획이 무산되어 시간이 생겼다. 세 번째, 간이사업자의 경우 코로X로 인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스마트스토어 창업에 들어가는 준비 자금이나 운영자금이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세 번째 항목에 부연설명을 하자면, 나는 플랫폼 사업자가 운영하는 오픈형 쇼핑몰을 런칭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플랫폼 측에서 신규 쇼핑몰에 제공하는 제로 수수료 혜택을 받았다. 또한, 간이사업자의 경우 수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세금 신고도 별 문제가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기도 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고, 소득이 없으면 세금도 없.. 고등학교 때도 창업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자등록을 내는 것에 큰 부담이 없기도 했고.
어쨌든, 괜히 오프라인 샵을 런칭해서 보란 듯 망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때부터 벌써 망할 생각을 했었다니 좀 웃기지만..) 온라인 쇼핑몰을 테스트베드로 삼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스마트스토어는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리소스를 절약하고 가설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길이었다.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은 딱 세 가지였다.
1. 100개 정도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으로 월 50만 원 이상의 수익(매출 X) 창출이 가능할 것인가
2. 사입이 아닌 위탁배송만으로 1번의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3.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팔면 잘 팔린 것인가
사입을 하게 되면 부담이 배가 된다. 물론, 추후의 마진을 생각하면 사입을 하는 것이 맞지만 잘 될 지도 안 될지도 모를 사업에 시간, 돈, 에너지를 곱절로 쏟고 싶지는 않았다. 이 사업에만 120% 리소스를 투자할 수 없는 내게 있어서는, 한 마디로 모든 방면에서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래서 저자본, 무재고, 위탁배송이라는 조건만큼은 타협하지 않았다.
(* 위탁배송 - 고객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했다는 알림이 오면 고객의 정보로 공급사에 발주를 넣고 공급사가 주문을 확인해 바로 고객에게 직배송하는 형태. 공급사와 고객 사이에서 수수료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마진이 적다.)
그럼 물건 가격을 올리면 되지 않냐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럼 고객들은 안 산다. 고객들에겐 최저가 쇼핑이 너무나 당연해졌기 때문에 많은 쇼핑몰들은 출혈경쟁도 감내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시 위탁배송 이야기로 돌아가서, 음음. 사실 그릇 같은 식기나 조명, 주방용품을 파는 쇼핑몰들의 경우 위탁배송을 해주는 공급처를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나 소량 주문은 더더욱 어렵다 보니 하는 수 없이 발품을 팔기로 했다.
하지만 일종의 영업을 뛰기 전에 사이트를 꾸며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꾸며봐야 스마트 스토어라지만 그래도 완전히 폐업 직전의 구멍가게처럼 보이는 것과 그저 그런 구멍가게(?)처럼 보이는 건 다르다. 그래서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고 적은 비용으로 네이버 광고, SNS 광고도 태워보면서 실험을 해봤다. 생각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금방 모을 수 있었지만 광고는 확실히 효율이 떨어졌다. 이 당시엔 광고 집행 일수, 범위에 따라 고객 집단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을 몰랐었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여하튼 광고로 들어온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나가기 일쑤였고, 구매전환율은 크게 떨어졌다.
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도매사이트(도매꾹, 도매매 등)에서 떼 오는 물건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정말 잘 찾아내지 않는 이상 다이소의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가격대가 저렴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스마트스토어의 톤 앤 매너와 다이소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으므로, 나는 구색을 갖추자마자 외부 공급사를 발굴하러 다녔다. 브랜드의 자체 스마트스토어가 있다면 내게 납품해 줄 이유가 없으니, 판매 채널이 중복되는 일이 없도록 개인 사업자부터 조금 큰 규모의 사업자까지 다양하게 공략했다. 그중에는 기존부터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브랜드들도 있었지만 아이디어스나 29cm 같은 이커머스에서 활동하던 개인 작가도 있었고, 간이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 전용몰도 있었다.
개인 사업자들은 대부분 SNS를 운영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인스타그램으로 먼저 DM을 보내 문을 두드렸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자의 경우, 애당초 해당 브랜드의 제휴 메일로 제안서를 보냈다. 물론 승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성사되는 케이스가 제법 있어 승산이 없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과정에서 리소스가 지나치게 들어가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최소한의 실험을 해보고 싶었던 건데, 점점 일이 번잡해지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이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면 안 된다.)
어쨌든, 그래도 적지 않은 공급처를 확보한 탓에 디퓨저부터 테이블웨어까지 다양한 품목들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는 누가 더 부지런한가의 게임이다.
물건을 100개 정도 등록하고 나니 '이젠 왜 안 팔릴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분명 검색 순위가 높고 경쟁 판매자가 많지 않은 물건 위주로 선별해서 일치하는 검색 키워드(태그)까지 달아놨는데 왜 안 팔릴까? 저 쇼핑몰의 판매글은 저렇게나 투박한데 왜 잘 팔릴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봐도 물건이 안 팔리는 데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같은 물건을 다른 쇼핑몰에서 더 싸게 팔고 있다던지, 애초에 고객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든지. 심지어는 '리뷰도 없는 곳에서 물건을 사기에는 불안하다'는 신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초보 사업자의 이런 문제점을 공략해, 상품을 가구매를 하고 리뷰 수를 조작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더라. 역시 대단하다. 가구매를 하면 검색 순위도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에 사장님 입장에서는 상당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일 수 있지만 적발시 스마트스토어가 영구 폐쇄될 수 있다. 어쨌든, 뭐가 문제인지 파악하기 위해 쓸데없는 광고도 다 내리고 어느 채널에서 가장 유입이 많은지, 어떤 상품을 고객들이 많이 찜하는지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경쟁자가 적은 상품은 리뷰가 없어도 잘 팔리는 편에 속했다.
그래서 아예 시작부터 경쟁자가 적은 상품만 선별해 들여오기로 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상품 검색량과 경쟁 종합 지표를 모두 고려해 상품을 입점시켜도 결과적으로 잘 팔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웃기게도 정말 그랬다. 검색량 대비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채널은 극히 적어서 물건을 공수해 등록해 놨더니, 정작 하나도 팔리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데이터를 읽고 입점을 시켰음에도 실질적인 판매량은 매우 낮았다. 검색량이 높다고 해서 판매 효율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경쟁 강도가 낮은 게 유리할 수는 있어도 구매율로 전환되기까지는 부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꾸준히 수익이 나는 효자 상품들이 존재했고, 그중에서는 조명이 꽤나 수익이 크게 남는 편이었다. 그래서 스토어 메인화면에는 항상 조명이 보이도록 설정해 두었고 실제로 판매도 제법 이루어졌다. 틈새 자랑을 하자면 내가 운영했던 스마트스토어의 경우 반품 건수가 0건에 수렴한다. 물론 배송 과정의 문제로 그릇이 깨져 고객에게 전달되는 바람에 CS 문의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변심이나 불만족으로 인한 반품 건수는 제로였다. (다행히 강성 고객도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운이 좋았던 거다. 고객들이 스마트스토어라는 오픈형 쇼핑몰에 가진 기대치가 크게 높지 않다는 측면도 한몫했다.)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배운 lessons learned는,
1. 비효율적인 광고 집행은 제 살 깎기. 어설프게 할 거면 애초에 태우지 말 것. 유입을 늘려도 구매전환율에는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점 유념하기.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통계 데이터나 참고할 것. 생각보다 상세하게 집계된다.)
2. 가장 효과가 큰 판매 채널에 집중하기. 유료 광고를 태우지 않더라도 유입이 제법 발생하는 채널이 있다면 해당 채널을 공략할 것.
3. 배송비를 잘 확인할 것. 가격이 조금 비싸지더라도 무료배송일 때 더 유리한 상품군이 있고, 반대로 최저가로 등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상품이 있다.
4. 럭키투데이 같은 플랫폼 자체 무료 노출 서비스를 잘 이용할 것. 확실히 유입 수에 차이를 보인다.
5. 당장 몇 백 원 아끼겠다고 찜하기 쿠폰을 아끼지 말 것. 이 세계에선(?) 찜하기 숫자가 곧 보증수표나 다름이 없다.
6. 당연한 말이지만 스마트스토어도 미끼상품이 있으면 좋다. 미끼상품은 최저가여야 하고 세일 중(할인가를 적용)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미끼상품이 조금 팔린다 싶으면 [같이 보면 좋은 상품] 메뉴에 유사한 카테고리의,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의 상품을 추가해 둘 것.
7. 이 또한 당연한 말이지만 페널티를 받지 않도록 유의할 것. 잦은 품절 취소나 상품 배송 지연은 곧 페널티로 이어지는데, 점수가 떨어지면 검색 순위도 함께 추락한다.
8. 중국에서 사입을 할 경우, 으레 도매가 그렇듯 많이 살 수록 저렴하게 구입해 올 수는 있다. 다만 그 이후의 검수, 판매 과정, 정산 주기 등도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
9. 슈퍼셀러들이 강조하듯 상품 이미지나 키워드 설정도 중요하지만, 계속해서 다양한 물건을 팔아보며 실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또한 기왕 사업자 등록을 내고 스마트스토어에 올인할 생각이라면 사업 초반부터 일찍이 다른 판매 오픈 채널로의 확장(쿠팡, 11번가 등)도 고려해 보는 것이 좋다. 리소스는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어도 스마트스토어 하나만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수익 구조가 안정화되는 시점이 빨리 찾아온다.
10. 어떤 고객이, 어떤 채널을 통해 유입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유입당 결제율이 높은 고객 집단이 무엇을 주로 구매하는지 보고 유사한 상품 카테고리를 늘려가는 방식도 좋다. 최저가로 승부를 볼 수 없다면 빨리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