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행착오의 시작
이제는 작년이 된 올해는 연말 회고가 꽤 길었다. 물론, 그 회고를 브런치에는 올리지 못했다. 사적인 내용들까지 포함되어 있는 올해의 연말 회고는 매년 썼던 그 회고와는 한참 결을 달리 해서 모두가 볼 수 있는 채널에는 도저히 올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새해의 각오 정도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만 지나면 없던 일처럼 바스러지기 마련인 새해 다짐을 공개적인 곳에 포스팅하면 그래도 조금은 처음의 의지가, 불씨가 유지되지 않을까 싶었다. (.. 누구나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 새해 버프가 상반기 내내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여기서 질문. 여러분들의 새해 공약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는 있다. 내게는 그 시기가 작년 하반기였다.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과분할 정도로 다양한 기회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나는 그 기회에 감사하기는커녕 매우 큰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제아무리 신입, 주니어라 해도 커리어적인 고민이 없을 리 없었다. 오히려 더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고, 그 일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왔기에 당시의 나는 그러한 기회들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경험이 있었다면 달랐을 수 있겠지만.
그때, 주변의 지인들에게 SOS를 쳤다. 잠깐의 커피타임을 통해, 그들로부터 다양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는데 개중 돌이켜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자긍심'과 '최선'이었다. 한 시니어 동료는 내게 조언했다.
"아영님이 일의 목적을 잘 이해하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 업무의 산출물이 좋다는 것도 알지만 딱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어요. 바로 자긍심이에요."
자긍심. 흔하디 흔하게 쓰이는 단어인 자존감도 아니고, 자신감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내게 말했다. 당시의 나는 하고 있던 일에서 그리 나쁜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심지어 세워둔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늘 스트레스를 받고 아쉬워했었다. 스스로 이룬 성취에 늘 의심을 하고 개운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름대로는 그런 강박적인 모서리를 바깥으로 표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그런 태도가 전파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무조건적인 낙관도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냉소적이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최선'도 있었다. 스스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냅다 고민을 들고 가면 마냥 좋은 조언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그 안일함은.. 솔직히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평소 가까이 지냈던 또 다른 시니어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가 가진 경험치에 의존하고 싶었다.
"업무량이나 성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요즘 자기 효능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처음 되돌아오는 말을 들었을 때 발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일의 성과가 그에 대한 증명이라고도 믿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최선은 내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최선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 이 방면이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다른 방면으로도 시도해보고, 거기서 막히면 또 다른 방면으로도 시도해보는 유연한 적극성. 정말 해 볼 만큼 다 해봤냐는 뜻이었다. 전과는 달리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이리저리 시도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왜 컨텍스트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처음에는 마냥 속상하기도, 억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나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 지점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드러났고 이내 고마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사실상 이런 조언은 주는 입장에서도 해주기도 어려운 말이라는 걸 알기에 그저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후 스스로 눈물 어린 자기 회고를 반복하며 내년의 키워드를 정했다. [자긍심]과 [최선]으로.
그 첫 발자국이 이직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위에 회고랑 이어지다 보니 감정적인 퇴사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아니고, 그저 내가 갈증을 느끼던 지점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에 결정을 한 것뿐이다. 개인적으로 '성장'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의미는 각자 다를 거라 생각한다. 채용 인터뷰에서도 말한 바가 있지만 내 방향성은 '직업인'으로서의 성장이었다. 물론 그 내부에는 세부적인 정성/정량 지표들이 포함되어있다. (놀랍게도 개인 노션에 고이 정리되어 있다. 파워 tj..)
개인적인 목표 관리는 OKRs를 통해 하고 있는데 (쓰다가 갑자기 OKRs는 쓰레기다!라고 외쳤던 한 동료가 생각났다. 번외지만 난 그가 내는 선명한 목소리가 좋았다.) 한 명의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라 생각해서였다. 무엇보다 인간의 사적인 자아는 몹시 나약해서(?) 정량적인 목표를 수립하지 않으면, 결국 그 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수증기처럼 증발하기 마련이라 믿기에.
괜히 데이터 드리븐이라는 보기 좋은 말을 붙였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설정해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고, 1월 초에 과감히 둥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인프랩(인프런)이라는 회사에서 '핀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일하고 있다.
다음 커리어도 교육으로 옮겨가는 나를 보고 한 지인은 내게 교육에 큰 뜻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교육자도 아닐뿐더러, 그에 관해 대단한 소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의 성장에 대해서만큼은 큰 관심이 있는 것이 맞다. 성장을 위한 강력한 수단이자 통로로 작용하는 것이 교육이다 보니 자연스레 마음을 두었던 것뿐인데 한국의 교육산업의 골자, 그 자체에 깊은 흥미가 있다는 오해를 종종 사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성장을 지향하며 행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는다. 크게는 각종 경제적, 사회적 이유들이 있을 것이고 때로는 그보다도 더 작고 사소한 문제들도 존재한다. 문제가 존재하면 자연스레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성장에 있어 병목이 되는 다양한 문제와 제약들을 또 다른 다양함으로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떨까?
인프랩은 인프런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성장기회의 평등'을 이루고 있는 회사다. 오픈 플랫폼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보니 조금 과장하면 배움의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기 적합하다. 솔직히 서비스를 처음 봤을 때의 첫인상은 '질 높은 콘텐츠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 반해 소극적인 마케팅을 하는 회사'라 생각했다. 2주 정도 지난 지금은 인프런이 왜 상품성을 강조하는 전략에 크게 주력하지 않는지,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고 입소문을 만드는 선순환에 집중하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그 방향에 몹시 동감하게 되었다. 그간 커뮤니티를 통해 접한 인프런의 선한 이미지와 내부적 방향이 크게 틀리지 않음을 명확히 알게 되자, 서비스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 자체도 변했다. (선하다는 표현에 누군가는 결국 사업이 아니냐며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대체할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새해에는 그렇게 새로운 시행착오의 문을 열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혀라 들은 소리가 하나 있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체성이 필요하다.' 주체적인 선택은 내가 내린 선택에 후회할 각오가 되어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에 몸담았던 조직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포근하고 멋진 둥지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스스로 내린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었다. (움치키 로봇 같은 사람이라 믿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크루들과의 작별도 정말 쉽지 않았다. 사회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에 열정적이고 다정한 크루들이 많았기에.) 그럼에도 스스로 더 깊은 세계를 호명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거기서 어떤 시행착오가,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앞서 말했던 '자긍심'을 갖기 위해서는 '최선'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과정에서 다양성을 잃지 않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유의미한 가치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는 게 현재의 욕심이다. 인프런은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어서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른다. 그리고 그 닉네임이 꼭 영어일 필요는 없다.
입사 후, 인프런의 대표인 쭈와 커피타임을 하면서 '제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시냐'라고 물었다. 커리어의 구간으로만 놓고 보면 당연히 응애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기대하는 역할이 있으니 뽑은 거라 생각했다. 쭈는 어떻게 증명할까 초조해하는 내게 말했다.
"엄청나게 대단한 걸 기대하지는 않아요. 당장의 대단한 성과보다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사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압박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스쳐 지나가며 '나는 그들에게 신뢰를 주는 동료였을까?'라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신뢰를 주는 동료였다면 나의 어떤 점이 신뢰를 주었을까? 고맙게도, 세심한 동료들 덕분에 퇴사 이후에도 동료 평가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들이 전달해준 피드백, 응원을 자양분 삼아 또 다른 이파리를 피울 수 있도록 즐겁고 고마운 마음으로 기꺼이 성장통을 겪어낼 준비를 할 테다.
주간 프리뷰 시간마다 쭈가 항상 엔딩 멘트로 하는 말이 있다.
'즐겁게 일하고, 증명합시다.'
이 말에 대한 답변은, 2022년 1월 11일에 내가 작성한 짧은 메모로 대체하면 좋겠다.
같이 어깨를 맞대고 일하는 모두에게 어렵지 않은 이름이 됐으면 좋겠다.
"편하게 핀리라고 불러주세요!"
낯선 환경이지만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 덕에 어려움 없이 지내는 중. 업무는.. 아직 섣불리 말하기엔.. 모르겠다. 그냥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모르는 게 보일수록 두려움이 실체가 돼서 무서운데(이것도 저것도 뾰족하게 잘 아는 게 없다고 생각되는 상태) 이런 마음도 결국에는 자만인 것 같다ㅠ 모르는 것 =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또 납득이 되고. 수습기간의 목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를 사는 것으로 잡자. 신뢰할 만한 사람임을 조금씩 증명해 나가자. 그게 내가 평생 해야할 일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