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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아작가 Dec 20. 2022

공기 열한 방울 (새벽 네시)

2022.12.19

1.

새벽 네시.

이틀째 잔 업무 중이다. 어제오늘 이틀째 이 시간에 잠들다 보면 좀 익숙해진다. 굉장히 고요한 시간.

세상에 나만 남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2.

새벽 세시 사십 분

이때쯤 되면 일을 하다가 조금 틈이 난다.

고민하게 되는 시간인 것 같다.

더 할까. 이만할까. 꽤나 집중이 깊어지면 그 속에 오롯이 나만 남는다. 어두운 물속에 있는 기분.


3.

새벽 세시 사십오 분

머리가 핑 돌아 그냥 자기로 한다. 차갑게 식은. 원래는 따뜻했던 메밀차 한 모금하고는 안경을 벗는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올린 집게핀을 안경 옆에 올리는데, 항상 안경을 먼저 벗으면 그 후 올리는 것(안경이나 립밤이나)을 바닥으로 함께 떨군다.


에너지 방전된 나는 그들을 그대로 둔다.

아무렇게나 그대로.


4.

눈을 껌뻑인다. 피로는 눈에서부터 온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안경과 집게핀에 시선도 두지 않고는 침대에 아무렇게나 눕는다.

꼭 작업실에서 잠깐 잠드는 기분.

아. 예전 생각. 라꾸라꾸 침대. 그리고 밤샘 작업.

새벽에 떠오르는 기억은 이렇게나 낮고 소리 없이 깊게 온다.


5.

날이 따뜻해지면 자전거를 타야지. 마음먹자마자

방심할 틈 없이 ‘겨울은 이제 시작이지’라는 생각이 아주 빠르게 치고 나온다.


6.

소중한 이는 항상 나에게 이겨내라고 이야기한다.

이겨내라니. 이기면 오는 상은 무엇일까.

누군가와 늘 이기기 위해 살고 있나.

그런데도 나는 습관처럼 이기기 위해 오늘도 몸에 힘을 빼고 걷는다. 가장 잘 이기는 방법은 ‘가장 유연한 태도와 자세’라는 생각이라.


7.

부드러운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부드러운 사람, 부드러운 무언가.

그리고 부드럽게 대하려는 태도들이 춤을 추며 오늘 밤을 재운다.


8.

새벽 세시 오십 분

이제는 정말 잠을 청해야 하는데, 아직도 눈만 반쯤 잔다. 스위치처럼 한 번에 작동하면 좋으련만.

내가 나를 재우는 일이 가장 어렵다. 혼자 잠드는 밤은 가장 잠 덧 심한 스스로를 잘 재워야 하는 일 같다.


9.

좋은 꿈 꾸길.

가장 좋은 꿈은 꿈이 없는 밤 아닐까.

밤새 네가 평안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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