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by 구인시

보리는 알래스카 기숙사에서 처음 데려온 날부터 십오 년이 지난 올해 여름 경기도의 우리집에서도

같은 모양새다. 공기 머금은 털은 바람 불면 흩어진다.

고양이들은 그렇다. 짧거나 긴 윤기가 나는 털을 몸에 딱 붙이고 벌렁눕거나 동그랗게 말아앉았다.


나도 웅크린 채로 기상했다. 얼굴이 따끔따끔하고 군데군데 불그스름했다. 자잔하게 길게 내려앉은 것이 세로주름이라는 것 같았다. 밑단이 공중에 걸린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기억했다.

<겨울철엔 젖은 수건을 넓게 펴두세요>


나는 패딩을 안 입고 홑겹 나일론 가방을 맨다. 가방 속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느라 머리를 똘똘 굴린다. 귀갓길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이마를 세게 긁는다.

신발을 벗기 전엔 가방의 물건을 쏟아낸다. 알코올을 뿌려 페이퍼타올로 기도하듯 닦아낸다.

타탄체크 목도리, 보풀이 인 회색 목티, 헐렁한 베이지색 바지도 벗어 빨간 바구니 안에 둔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빨간 털실이 감긴 게 제격이지.

혜경, 아영, 나영…


어젯 밤에 젖은 수건을 널어놨다.

온수를 적셔 김이 났다. 유칼립투스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리니 눈 덮인 삼나무향이 났다.


이 땅에서는 맨발로 슬리퍼를 신었다가는 동상에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이것을 꼭 기억하라던 J선생님의 말을 나는 기억했다.

사실 맨발로 나가 본 적이 있다.

큰 소리로 겅충겅충 뛰며 이것 보라며, 괜찮지않냐며 손을 주머니에 넣고 종종 뛰어가다 빙판에 넘어질뻔 했을 때 배와 엉덩이에 콱 힘을 주고 기가 막히게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는 소녀 여섯 명이 4번 방에 모여 과자를 먹으면서 맞아! 나도! 크게 떠들었다.


까만 밤에 하얀 앞니가 반짝한다. 모로 눕는다. 그런데 참,

작년 겨울에는 양 손에 개 목줄을 잡고 걷다 발목이 부러졌고 오래 걷지 못했지.


꿈에 내 몸은 고열로 기우뚱했다. 손끝으로 끌어올린 이불은 팽팽한 섬유로 허공에 떠 있었다.

여기서는 심장수술을 해도 걱정 없습니다.

기침이 터져도 목구멍에서 멎는다.

방의 중심에 섰다. 사방을 둘러싼 얇은 벽.

여기를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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