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책가게가 열리기까지_05

내 시간을 지키는 방법 알아가기

by 조아라

즉흥적으로 정한 오픈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가게 물건이야기는 정점을 찍은 후 안정을 찾았다. 가게에 필요한 것의 갯수가 다행히 줄어들었고 결정장애도 호전(!)되었다. 그래도 책을 입고하는 것은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여러번 망설이고 누르고 있다. 이는 어쩌면- 가게를 닫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아마도 당연한 소리겠지만.


#책을 고른다는 것, 나를 드러내기(의 부담을 견디는 것)


내가 돌아다닌 모든 독립서점은 그 서점 매니저들이 만든 컨셉에 맞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대중적으로 잘 팔리는 책들만 있는 곳은 없었다!) 컨셉을 말해주지 않아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책이 기본정보가 되어 여기 책방 주인은 어떤 사람이겠구나 하는 몹쓸 점쟁이가 스스로 되곤 했다. 이젠 반대의 입장이 되버렸다. 내가 진열한 책들을 보고 나를 생각하는 그 부담을 견뎌야하는 때가 온 것이다. 두둥! (오바일 수도 ;;)


책의 컨셉을 잡을 때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일단 내가 모르는 책들을 소개하고 싶지 않다는 기준이 무엇보다 세게 작용했다. 내가 만든 책, 내 지인이 낸 책, 내가 읽은 책, 내가 읽고 싶은 책 등 나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 컨셉을 잡았다. 당장 많이 들이진 못해도 서서히 내가 알아가는 책들이 늘어간다면 책가게가 끝이 날 때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게다가 설사 다 안 팔리더라도 버리지 못할 책들일테니까, 더더구나 나와 관련있는 것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


#운영방침은 무엇인가요


내가 하고 싶은 운영 방식도 슬슬 정해야했다. 오픈 시간, 가게 홍보, 대관 기준 등을 꽤 예전부터 생각해놓아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정했다. 일단 '언제 가게 문을 열 것인가?'는 매일 오픈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친절감정 노동력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당분간 알바가 있으니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오픈하리라 정했다.(남은 4일을 비워두긴 아깝지만;;) 영업시간도 6시간 정도. 오후 2시부터 저녁 8시까지가 적당할 것 같았다. 그리고 가게 홍보는 인스타그램 하나가 끝. 오픈식을 거하게 할 생각도, 기념품을 배포할 것도, 가게 앞 눈에 띄는 춤추는 풍선도 놓고 싶진 않았다. 만약 가게 운영에 적응이 될 즈음에는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싶긴 하다. (드립 가득한 재밌는 트윗을 튓튓하고 싶다. 히히) 대관 기준은 내가 알고 있는 여러 공간의 기준을 참고해서 정했는데 과연 어떤 모임으로 대관 문의가 언제즘 올 것인지 사뭇 기대된다.


심각한 상황을 예상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상한 나쁜 사람이 가게에 와서 행패를 부린다거나, 화재가 난다거나 하는 나와 공간의 안전에 관련된 상황에서부터 손님이 책을 보다가 찢는다거나, 길고양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거나 하는 상황까지 - 어쨌든 공간 이야기가 시작되면 예기치 못하는 상황은 무엇이고 발생할 것이기에 답은 없겠지만 계속 예상해보고 시물레이션 해야할 것 같다. 먼저, 소화기부터 놓아야겠다.


그나저나 오픈을 앞두고 다시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그러게, 왜 남원이었을까?


작은 소도시나 시골 마을에서 뭔가 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을까 하던 차에 사람들을 모아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지역 사례를 찾아 소개하고 같이 가서 그 지역 사람을 만나 얘기나누는 프로그램을 코디한 적이 있었다. 지역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보였는데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랄까 생활의 기술이 상당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기술을 가진 게 아닌 배우고 길러진 것일테다. 난 그 기술이 부러웠고 나도 그런 기술들이 길러지는 환경에 나를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돌아다닌 곳 중에 남원이 있었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람을 만났었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었다.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고 (첫째날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셔버려 필름이 끊긴 기억과 함께 -_-;) 언젠가 또 와야지 마음 먹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여행으로 남원을 다시 찾았고, 그 마을도 갔다가 시내도 들렀다. 그 땐 하나밖에 없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어느 큰 방에 홀로 머물면서 남원 시내 곳곳을 자전거를 타며 다녔다. 그러다 문득 지역에서 뭔가 해볼 때 남원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지리산 자락에 있고, 자전거로 돌아다닐 수 있고, 곳곳에 편의점도 있는 남원 시내로 말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완전히 정착을 하겠다 굳게 다짐하지도 않는, 그냥 딱 '남원에서 시작해보자' 에서 더는 생각을 덧붙이지 않은 체 시간을 보냈다.


알아가는 책가게는 그 시간이 만든 공간인 셈이다. 이제 내가 일하는 시간, 내가 쉬는 시간, 내가 오가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 내가 먹고자는 시간 등 온전히 내가 내 시간을 운용하는 길도 공간 오픈과 함께 열렸다. 내 생활의 자유도는 높아졌지만 설명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의 정도도 따라서 깊어진 기분이다. 긴장하고 경계하면서 내 일상의 정도와 선(線)을 퍼즐처럼 맞춰나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2017년 9월 30일 토요일 오후 1시 #알아가는 책가게 문을 열었다.

-끝-


*[알아가는 책가게가 열리기까지] 의 글은 이 다섯번째 글로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는 [알아가는 책가게를 열고나서]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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