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는 책가게가 열리기까지_04

고민과 결정을 반복하는 지난한 시간들

by 조아라

공간을 계약하기까지의 고민이 100이라고 한다면 그 공간을 채우고 유지하는 고민은 '100 곱하기 100 곱하기 100즘 되는 것 같다. 공간을 알아보기 전 이따금 상상했던 가게 운영 이미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의 파도에서 잠시 서핑을 탔더랬다. (자영업 시작과 끝 사이 이제 1단계 넘었을 뿐인데 파도가 너무 자주 오는 듯 ;;)


#물건이야기 그리고 쇼핑 스트레스


일단 카운터 책상과 의자를 주문했다. 이거 알아보는데도 가구 사이트를 수십개나 들락날락하면서 선택 장애에 거듭 부딪혔고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테이블, 책장 등 부피가 큰 가구들로부터 볼트 같은 손톱만한 것까지 필요한 물건은 어마어마했고 그렇게 매일 물건들을 사고 얻었다. 기꺼이 자신의 물건을 주겠다고 한 지인들에게 고마운, 좋은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잊지 말고 기록해놓고 나도 꼭 도와야지 다짐했다.


아무튼 많은 물건, 그 중에서 고민의 크기가 컸던 것은 바로 냉난방기. 설치 작업이 필요한 거니 미리 해놔야겠다는 생각에 구매 결정 마감기한까지 정해놨더랬다. 적어도 두번의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공간에서 보내야 하니 신경써서 골라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조언도 구했는데 무엇보다 소비전력이 신경쓰였다. 전기를 많이 안 쓰는 것으로 알아보다가 업소용 냉난방기는 기존 공간의 크기보다 좀 더 넉넉하게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연 그래야 하나 싶어서 한전 사이트에 들어가서 전기 종류까지 알아봤다. 단상(220v)과 삼상(380v)이라는 상상도 못한 전기 공부를 하였고 한전 상담원과 거듭 대화(?)를 나눴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흠... 결국 보기를 줄이고 줄여서 결정했다. 그렇게 고민의 우여곡절 끝에 냉난방기는 공간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후---하-)


어쨌든 내가 주로 보내는 공간이지만 남도 보낼 공간이니까, 내 기준에서 살 물건들이 있고 남 기준에서 살 물건들이 있었다. 그 기준을 내가 정해야 되는 게 참 어려웠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필요한 것을 사는 건 당연한 거겠지만 물건 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최대한 내가 갖고 있거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채우고 싶었다. 사는 걸 조금 미뤘다가 결국 사게 될 때는 두번 걸음하게 되고 그러니까 에라이 그냥 사버리자 싶어 샀다가, 내가 갖고 있는 걸 사게 되면 또 그게 그렇게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래, 잘못 살 수 있다. 그러면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면 돼지' 하는 생각으로 애써 착한 기부자의 마음으로 구매를 합리화하곤 한다.


가구는 아예 처음부터 이케아로 정했다. 몇가지는 내가 직접 만들어볼까 생각하다가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구매할 리스트를 미리 뽑아가서 배송을 맡겼다. (이케아 만세!)


그리고 나는 가구 조립왕이 되었다.


이제 내가 조립 못할 가구는 없을 것 같다


#공간을 이해하기


당분간 건물이 경매로 넘어간다거나 건물주가 바뀔 것 같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 거니 보호 장치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9월의 첫날 확정일자를 받으러 세무서에 가서 지장이란 걸 찍어봤다. (내 소중한 퇴직금, 놓치지 않을 거예요!) 공간을 채우는 것도 채우는 거지만 공간의 구조, 건물도 알아놔야 된다는 생각에 옆 공간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건물 주변을 종종 어슬렁 거렸다. (그런다고 뭔가 알아낸 건 아니지만 ^^;)


#생계고민본격화


사업자등록증을 만들 때 개업일자를 적는 란이 있었다. 딱히 생각해둔 날짜가 없었는데 그냥 즉흥적으로 9월을 넘기지 말자는 생각에 9월 30일이라고 썼었다. 그렇게 오픈일을 별 생각없이 정했다. (-_-) 그 기간 안에 오픈을 준비하면서 가게 월세를 내는 날이 다가왔다. 이번달 수입이 제로인 상황에서 말이다. 내가 장사를 하긴 하는구나를 실감했다. 예비 장사꾼의 눈으로 본 세상은 사뭇 달랐다. 길가를 가득 메운 가게 간판들, 기존 자영업자들, 상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다들 어떻게 장사를 하고 사는 걸까? 대단해보이기까지 하다. (하긴 나는 직장이라는 곳을 다닐 때도 어떻게 다들 직장을 다니는 거지 하고 생각한 것 같은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나의 생계 고민이 시작된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나는 하찌와 TJ의 노래 '장사하자'의 흥겨운 리듬이 현실에선 마냥 즐거울 수 없을 것이라는 것쯤은 알만한 일상을 산다고 자부했건만, 이런 순간(월세를 내는 날?)에 그 마음이 조금 흔들림(?)을 느끼는 건 아마도 나의 자부심이 그닥 견고하진 않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첫 장시간 운전


가게를 준비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면 바로 내가 처음으로 장시간 운전을 한 날일 거다. 운전면허는 고등학교 졸업 후 너도나도 따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56만원이나(나름 학생할인 받았는데도) 들여서 땄다. (지나고보니 그 때 따놓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후 거의 10년 넘게 운전할 일이 없었는데 작년에 문뜩 올해 가게 준비하려면 운전할 일이 생길 것 같아 쏘카나 그린카 같은 걸로 운전연습을 했다. 처음 서울 시내에서 운전한 날, 조수석에서 운전을 가르쳐 준 지인 덕분에 운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지인들이 공간에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물건들이 제법 부피가 컸다. 그래서 날을 잡아 차로 이동해보자 마음 먹고 백미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경차 레이에 테트리스처럼 물건을 쌓았다. 더 큰차로 가면 좋았겠지만 큰 차 운전은 또 안 해봐서 쉬이 도전할 수가 없었다. 출발하기 전 심호흡 한번 하고 안전운전을 스스로 기원하면서 서울을 빠져나왔다. 짐을 그렇게 싣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런 상태로 고속도로를 혼자 타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빈 차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극심한 교통체증을 경험한 것도 처음이었다. 발목이 나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길 위에서 스트레스 양의 맥스치를 경험했다. 이유 모를 택시기사의 쌍 욕하는 입모양도 보면서 말이다. 드라이브 낭만도 정도가 있는 법, 역시 남이 운전해주는 게 짱이다 라는 절실한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다. (ㅠㅠ)


이렇게 이야기들을 모아놓고 돌아보니, 내 안에 낯선 고민과 사람들의 눈빛을 경계하며 뚝딱 뚝딱 동분서주하며 준비한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에 내가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그 신기한 시간이 지남과 동시에 텅 빈 공간에는 물건과 책이 자리를 잡았고 나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 9월 30일 #알아가는책가게 오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계속)